신발 神話 지키는 '부산의 다니엘 헤니'

한 외국인 청년 사업가가 부산 지역 경제를 살린 공로로 지난 9일 서병수 부산시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수상자는 스위스 신발 브랜드 조야(Joya)의 칼 뮐러(32) 대표였다.

뮐러는 23세이던 2008년 대학을 그만두고 스위스에서 신발 사업을 시작했다. 회사는 성장을 거듭해 현재 한국을 비롯한 28개국 2400여개 매장에서 제품을 판다. 직원 80여명으로 작년 매출 200억원을 올린 이 회사의 신발은 한국에서 97%생산된다. 부산에서 '조야' 브랜드가 찍혀 생산되는 신발만 한 해 25만 켤레. 96%는 해외로 수출된다.

"생긴 건 좀 다르지만 한국 사람이에요. 어제 저녁은 알탕 먹었어요. 추우니까 따뜻한 국물이 당기잖아요."

뮐러는 한국말에 능숙했다. 그는 "엄마 나라 한국이 진짜 내 고향"이라며 "서울 삼각지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경기도 인덕원 근처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고 했다. 스위스인인 아버지는 교환 학생으로 한국에 왔다가 한국인 아내를 맞았다. 아버지는 결혼 후 한국에서 수입 용품 사업을 하다 뮐러가 5세 때 가족과 스위스로 갔다.

"스위스에선 한국이 싫었어요. 제가 스위스 사람보다 눈이 작거든요. 학교에서는 중국인이라고 놀림을 받았어요." 그는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한국적인 사랑을 내게 보여줬다"며 "그건 바로 밥"이라고 했다. 주말마다 축구 연습이 있을 때 어머니는 가방에 샌드위치와 김밥, 과일을 꽉꽉 채워왔다. 친구들은 "칼, 너희 엄마 또 차이니즈 피크닉(중국 소풍) 왔다"며 빈정댔다. 뮐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엄마는 언제나 음식이 가득 든 바구니를 싸들고 나를 챙겼다"며 "스위스엔 '우리'라는 말이 없는데 엄마는 늘 '우리 아들' '우리 가족'이란 말을 썼다"고 했다.

어머니의 나라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군 복무를 마친 2006년 한국에 왔다. 그는 어학당을 다니면서 작은 사업들을 벌였다. 뮐러는 "한국은 내게 사업의 ABC를 가르쳐 준 나라"라고 했다. "이태원에서 '짝퉁' 명품을 떼다 스위스에서 팔았는데, 스위스 관세청에 걸려 바로 접었죠. 하하." 다음엔 동대문 도매 시장 옷들을 스위스로 보냈다. 장사가 잘되자 아예 독립 브랜드를 만들어 동대문 의류 공장에 디자인도 맡겼다. "한국 사람들 정말 의욕적이고 똑똑해요. 여기서 성공하면 세계시장에서도 잘 팔릴 거란 확신이 들었어요."

2008년 건강 기능성 신발인 조야를 런칭할 때도 한국의 도움을 받았다. 뮐러는 "1980년대 신발 호황을 누리던 부산 지역엔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장인이 많았다"며 "고품질 기능성 신발을 만들기엔 부산이 최적지였다"고 했다. "생산 비용만 보면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베트남에 하도급을 줘야 해요. 저는 그러기 싫어요." 2010년 연평도 포격 사태 때 이사진은 공장 이전을 요구했지만 뮐러는 생산을 고수했다.

"부산 공장장 아저씨가 '한국 기업은 다 떠나는데 외국인이 와서 사업한다'고 고맙다 해요. 한국에서 좋은 품질의 매력적인 신발을 만들고 수출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뮐러는 올해 신발 생산 직영 공장을 부산에 세울 계획이다. 그는 "신발 생산 세계 지도에 부산을 다시 올려놓는 게 꿈"이라며 "기술력 있는 신발은 '메이드 인 부산'이란 공식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