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의 외로움, 詩가 달래줬죠"

"등단 축하까지 받았어요. 풍월만 생겼지 저는 시(詩) 전문가가 아닙니다. 습작까지 평생 다섯 편도 못 썼어요. 완성한 건 연애 시절에 써먹은 한 편뿐입니다(웃음)."

한국시인협회는 18일 신년회에서 신창재(63) 교보생명 회장 겸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에게 명예 시인 패를 전달한다. 대산문학상을 비롯해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을 지원하고 '광화문 글판'으로 도시인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 공로다. 신 회장은 "교보문고라는 정신문화 공간을 창업하고 광화문 글판의 씨앗을 뿌린 선친(고 신용호)이 좋아하실 것 같다"며 "잘라먹지 않고 이어받아 키운 게 기여라면 기여지만 임직원 덕분에 일궈낸 것"이라고 했다.

"집사람이 그러더라고요. 명예 시인은 지적이고 정서적인 느낌이라 명예 요리사보다는 훨씬 좋다고."

신 회장은 "경영에 필요해서 시를 읽지 전문가는 아니다"며 "문학 지원이나 광화문 글판은 직업적으로 내 존재의 이유"라고 말했다. 빠르고 어지럽게 변해가는 시대에 시가 대중과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까. 그는 "시에는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순기능이 있다"며 "지치고 힘든 마음과 좌절을 어루만지고 위로하고 격려한다"고 답했다. "사원들 앞에서도 짧고 함축적이면서 전달력이 강한 시를 활용해 정서적 공감대를 키우곤 한다"고 했다.

평소 좋아하는 시나 시인을 묻자 망설였다. "애호가가 아니라 행정가라서 누굴 고르기 어렵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좋아한다고 했다. 질문을 역대 광화문 글판(1991년~현재)에 실린 문구 중에서로 좁혔다. 신 회장은 세 편을 꼽았다.

2004년 봄글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도종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와 2011년 여름글판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정현종 시 '방문객')와 2016년 가을글판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고맙다/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김사인 시 '조용한 일')였다.

교보생명에 들어오기 전 그는 서울대 병원 산부인과 교수였다. '흔들리며 피는 꽃'에 대해서는 "경영자가 되고 나서 겪었던 혼란과 외로움을 알아주고 달래줬다"고 했다. '방문객'은 사내에서 반향이 컸단다. 신 회장은 "노동조합 사람들이 '인사관리를 개선해야 한다'며 그 시를 인용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니까"라며 웃었다.

대산문화재단은 지난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영국 출판을 지원하기도 했다. 신 회장은 "올해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르 클레지오 등을 초청해 6년 만에 세계문학포럼을 열고 윤동주 탄생 100주년 사업도 펼쳐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