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접고 잡념 오려냈더니… 작품 하나 뚝딱

스마트폰과 텔레비전, 레고와 로봇이 없던 시절 아이들은 종이를 갖고 놀았다.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여 원하는 건 무엇이든 뚝딱 만들었다. 풍족해진 시대에 더 이상 아이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던 종이가 최근 '어른의 장난감'으로 다시 사랑받고 있다. 종이접기는 물론 종이 인형 옷 입히기, 페이퍼 토이, 페이퍼 커팅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종이가 놀이 소재로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건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씨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어린 시절 TV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종이접기 아저씨를 만났던 젊은이들이 오랜만에 TV에 다시 등장한 그를 보며 향수를 느낀 것이다. 전명진(26)씨는 "성인들도 종이접기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완성품을 통해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종이 인형 옷 입히기는 가위로 옷과 인물 모형을 잘라내 인물에 옷을 걸치는 놀이. 어릴 적 이 놀이를 했던 30~40대 여성들이 다시 추억에 빠졌다. 지난해 출간된 종이 인형 놀이 책만 10권을 넘는다. 여덟 살 딸과 함께 종이 인형 놀이를 한다는 박주연(39)씨는 "요즘 장난감은 아이와 같이 갖고 놀기가 어렵지만, 종이 인형은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와 자연스럽게 놀 수 있다"고 말했다.

페이퍼 토이는 남성에게도 인기를 끄는 입체 장난감이다. 두꺼운 종이를 자르고 붙여 마치 작은 레고 블록처럼 장난감을 만든다. 귀여운 캐릭터 모양이 많다. 시중에서 1만원대에 판매되지만 인터넷에서 도안을 구해 종이에 출력해서 직접 만들어도 된다. 이두형 DNA디자인스튜디오 실장은 "왜 종이를 비싼 돈 주고 사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번 종이의 매력에 빠지면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고 했다.

종이는 작품이 되기도 한다. '페이퍼 커팅 아트'는 눈, 꽃 등 정교한 그림이 그려진 종이 도안을 칼로 섬세하게 잘라내는 활동이다. 완성품을 액자에 끼우거나 줄로 엮어 창문이나 벽에 걸어두면 멋진 인테리어 소품이 된다. SNS에도 페이퍼 커팅 작품 사진 올리는 게 유행이다. 회사원 김자연(33)씨는 "촘촘한 무늬로 가득 찬 도면을 보면 처음엔 숨이 턱 막히지만, 칼로 잘라내는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잡념이 사라지니 일종의 명상과도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