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인삼·굴비… 설 선물세트 안 팔린다

굴비 주산지인 전남 영광 법성포는 설 명절을 앞두고 있지만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매년 설 대목이면 이곳 보관창고는 굴비로 꽉 찼지만, 올해는 물량을 3분의 1로 줄였다. 굴비 상인 한영임씨는 "과거에는 설 연휴를 앞두고 몇십억원어치씩 사서 보관해놓았다"면서 "물량을 대폭 줄였는데도 안 팔려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인삼·한우 산지도 마찬가지다. 저가(低價) 상품을 만들 수 없는 인삼 상인들은 설 대목을 포기하는 분위기다. 인삼 상인 성동수씨는 "경기가 너무 침체돼 설 선물 세트를 전혀 장만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A백화점 정육 구매 담당자는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은데다 청탁금지법이 겹치면서 작년 설 때보다 매출이 20% 이상 줄었다"며 "명절 대목이라는 말이 없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설 연휴가 1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체감 경기는 최악이다. 주요 백화점들의 설 선물세트 판매는 최대 10%까지 하락해 사상 처음으로 역신장했다. 그나마 상황이 좋았던 대형 마트나 인터넷 쇼핑몰도 올해는 정체 수준이다. 주요 식당가도 텅텅 비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7일 "서울과 6대 광역시의 1000여개 소매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올해 1분기 경기전망지수(RBSI)를 조사한 결과, 전망치가 4년 만의 최저인 '89'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RBSI가 80점대를 기록한 것은 2013년 1분기 이후 4년 만에 처음이다〈그래픽 참조〉.

◇백화점, 설 선물세트 판매 감소

 

현대백화점은 지난 9~15일 진행된 설 선물세트의 본 판매 실적이 작년 동기보다 10.1% 하락했다. 품목별로는 정육이 12.3%, 수산이 11.1% 하락했고, 가격이 많이 오른 청과 부문은 12.5% 감소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12~15일 판매 실적이 작년 동기 대비 1.6% 떨어졌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청탁금지법의 영향으로) 확실히 단가가 낮은 쪽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어, 앞으로도 실적이 호전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대형 마트와 인터넷 쇼핑몰은 저가 제품에만 판매가 몰려 실적 개선이 어려울 전망이다. 이마트의 지난달 8일부터 지난 16일까지 설 선물세트 판매 매출은 작년 동기와 비교해 3.7% 증가했다. 인터넷쇼핑몰 GS샵의 지난 한 주간 명절 선물세트 매출도 전년 대비 1% 증가에 그쳤다. 상황이 비슷한 11번가가 지난 9~15일 설 선물세트 구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3만원 이하의 선물 세트 판매는 전체의 87%로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주요 식당가도 텅텅 비었다.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서울 강남역 인근 식당들은 '연초 특수'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주점과 치킨집 등의 매출도 계속 줄고 있다. 서울역 인근의 한 호프집 주인 김모(47)씨는 "소비가 확 줄었다는 작년에도 하루 20여 테이블에 손님을 받았는데, 요즘은 금요일에도 10여 테이블 채우기가 어렵다"고 했다.

의류 업체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 종로5가 아웃도어 거리의 업주들은 "이런 추세라면 겨울용 방한 의류 상품이 대부분 재고 처리될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소매유통업 체감 경기 4년 만에 최저

앞으로 상황도 좋아질 것 같진 않다. 통계청이 지난 11일 발표한 지난해 실업자가 101만2000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실업률이 3.7%로 세계 금융 위기 직후인 2010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상황 등이 앞으로 상황도 더욱 어둡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상의가 발표한 업태별 RBSI에서도 인터넷쇼핑몰·홈쇼핑을 제외한 대부분 업종의 경기가 지난 분기보다 어두울 것으로 전망됐다. 백화점은 지난 분기보다 5포인트 하락한 89를 기록했다.

주요 고객층인 고소득층의 소비 여력이 줄고, 매장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실제 구매는 온라인으로 하는 실속형 소비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슈퍼마켓(85)과 대형마트(79)도 당일배송을 앞세운 온라인 유통업체와의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1분기 부진이 예상됐다.

유통기업들은 1분기 실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요인으로 ‘소비심리 위축에 따른 매출부진’(50.2%)을 가장 많이 꼽았다. 대한상의 이동근 부회장은 “국내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사드 보복조치까지 이뤄져 유통업계는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며 “여기에 청탁금지법 이후 맞이한 첫 명절이라는 점까지 더해 설 특수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