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서울지법→구치소 대기… 이재용 평생 가장 길었던 하루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은 18일 특검 사무실과 법원, 서울구치소를 오가며 그의 인생에서 가장 길었을 하루를 보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일찍 서울 한남동 자택을 나서 서초동 사무실에 들렀다가 대치동에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는 오전 9시 15분쯤 도착했다.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서는 특검팀의 차량으로 법원까지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15분가량 특검 사무실에 머물다 영장실질심사 예정 시각인 10시 30분보다 30여분 이른 9시 55분쯤 서울중앙지법 319호 법정에 들어섰다.

이날 그가 모습을 드러내는 곳마다 수백 명씩의 국내외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뇌물 공여 혐의를 인정하느냐" "대가 관계가 없었느냐"….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그는 한마디도 답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선 평소의 미소를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진행한 영장실질심사는 점심식사 휴식 시간 없이 오후 2시 15분까지 3시간 45분간 이어졌다. 지난해 9월 말 3시간 정도 걸렸던 신동빈 롯데 회장(영장 기각)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보다 훨씬 길었다. 이 부회장은 영장실질심사가 끝나자마자 다시 특검팀 차량에 타고 서울구치소로 이동해 다음 날 새벽까지 법원의 판단을 기다렸다.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피의자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구치소 혹은 검찰청에서 대기하며 '결론'을 기다리게 된다. 조 판사는 이날 이 부회장이 서울구치소에서 영장 발부 여부를 기다리도록 했다. 이 부회장으로선 처음 구치소에서 밤을 보낸 셈이다.

영장실질심사에선 특검과 삼성 측이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였다. 특검팀에선 양재식 특검보와 김창진 부부장 검사, 박주성 검사 등 4명이 나섰다. 삼성 측에선 판사 출신인 법무법인 태평양의 문강배·송우철·권순익 변호사, 대검 중수부 연구관 등을 거친 이정호 변호사 등 6명이 참여했다. 특검팀 윤석열 수사팀장과 절친한 문 변호사는 이번 특검보 후보로도 추천됐었고, 송 변호사는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고법부장급)을 지냈다.

송 변호사는 실질심사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핵심 쟁점은 뇌물 공여의 대가성 문제였다"고 전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경영권 승계의 대가로 박근혜 대통령 측에 433억원의 뇌물을 건넸다며 관련 정황과 진술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 부회장 측은 '대통령의 강요로 억지로 낸 돈이고 삼성은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검팀이 "증거인멸이 우려돼 구속이 필요하다"고 하자 이 부회장 측은 "글로벌 기업인 삼성의 경영 공백과 국가 경제에 미칠 악영향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실질심사가 끝난 뒤 특검팀은 "최선을 다해 범죄 사실을 소명했다"고 했고, 이 부회장의 송우철 변호사는 "사실관계와 법리에 대해서 충분히 소명했다. 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내려줄 것을 확신한다"고 했다.

삼성그룹 분위기는 이날 온종일 무겁게 가라앉았다. 삼성은 매주 수요일 갖는 '수요사장단 회의'를 취소했다.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 모두 참석하는 이 회의는 2008년 삼성특검 당시에도 취소된 적이 없고, 검찰의 압수 수색을 받던 날도 열렸다.

삼성 미래전략실 임직원들은 외부 약속을 대부분 취소하고, 사무실에서 TV 등을 통해 이 부회장의 모습을 지켜봤다. 최지성 부회장 등 삼성 핵심 인사들은 심야까지 사무실에서 법원의 결정을 기다렸다. 한 삼성 직원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그룹이 어떻게 될지 모두 걱정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