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하고 고단한 삶일지라도… 그들이 찍은 건 사랑

'벚꽃놀이 하면 떠오르는 게 먹고 마시고 다음 날 속 쓰리고 머리 아픈 기억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녀와 함께 갔을 때 처음으로 꽃이 아름답게 보였다. 피어 있는 꽃도 예쁘지만 지는 꽃도 좋았다.'

갤러리 하얀 벽이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서울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전 제목이 '꽃은 봄에만 피지 않는다'(25일까지)다. 양승우(51)와 히사츠카 마오(34)는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부부 작가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찍었다. 변두리 단칸방에서 신접살림 시작할 때 가난한 남편은 "아내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 사진"이라 믿었다.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서로 찍어주기로 다짐했던 게 쌓여 '작품'이 됐다.

앵글 속 아내와 남편은 지지리도 가난하다. 비좁은 방엔 남루한 세간살이가 널려 있고, 집세를 벌기 위해 공사판 세탁소 제다공장을 전전하는 남편은 매일이 고단하다. 그래도 행복하다. 함께 이를 닦고, 남편의 머리를 깎아주고, 아내 대신 이불을 너는 남자의 표정은 천진하다. 말다툼 끝에 돌아누운 아내의 등을, 짓궂은 남편은 사진으로 남겼다. 양승우는 "내일 외출하려 걸어놓은 아내의 원피스 사진을 찍을 때 제일 뭉클했다"고 말했다. "그 모습이 꼭 목을 맨 형상 같아 섬뜩했지요. 그 짧은 순간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이 스쳐서." 아내 마오는 '어디로 갈까?'라는 제목을 붙인 남편의 사진을 가리켰다. 자동차 타고 가다 짙은 안개로 한 치 앞이 안 보이자 운전대에서 내린 남편이 고속도로에 서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나' 궁리하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다. "우리 삶의 매 순간이 그렇잖아요."

두 사람은 도쿄공예대 사진학과 선후배로 만났다. "동네에서 깡패질 하다 뒤늦게 철들어" 나이 서른에 일본으로 건너가 사진공부를 시작한 양승우를 마오는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 좋았다"고 말했다. 마오는 아버지가 와세다대학 교수인 유복한 집안 딸이다. 남편은 자기 몸에 새겨진 문신만큼이나 이상하고 무서운 사진만 찍었다. 신주쿠의 야쿠자, 노숙자, 술 취해 싸우는 사람, 경찰에 검거된 범인, 환락가 밤거리를 혼자 걷는 집 없는 아이…. 지난해 모국에서 연 첫 전시 '청춘길일'도 조폭들 삶을 가감 없이 담아내 사진계에 충격을 던졌다. "내가 나쁜 사람이라 그런가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보다 밑바닥 인생들에 끌려요. 삶의 민낯이랄까요. 그들이 풍기는 냄새까지 사진에 담고 싶을 만큼 깊은 연민을 느끼죠."

그에 비하면 모국에서 두 번째로 선보이는 아내의 사진은 천상의 사진이나 다름없다. '행복은 방의 면적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사진만큼이나 두 사람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듯 보였다. "가끔 아내 사진을 꺼내보며 울 때가 있어요. 참 예쁜 아이가 나 같은 남자 만나 고생한다는 생각에." 마오는 고개를 저었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자고 일어났을 때 남편이 내 옆에 누워 있을 때예요." 둘 사이 아직 아기는 없다. "아이가 생기면 돈을 벌어야 하니 제가 사진을 포기할 것 같아서요. 저는 사진을 찍지 못하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02)2269-2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