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렁이는 목젖의 떨림… 여기선 이것이 연기

99분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번지점프를 열 번쯤 한 것 같다. 흠씬 두들겨 맞은 샌드백처럼 녹초가 될지도 모른다. 긴장감을 끌어올릴 땐 마치 비행기가 급상승할 때의 이명(耳鳴)처럼 '삐~' 하는 환청이 들린다. 등장 인물은 딱 다섯 명. 비극도 배신도 없이 좁은 집 안에서 오가는 대화와 과거 회상이 전부다. 그런데도 피투성이 격투기를 링 위에서 지켜보는 듯 온몸의 털끝이 곤두선다. 18일 개봉한 그자비에 돌란 감독의 '단지 세상의 끝'은 형용하기 어려운 에너지로 가득 차 있고, 심지어 맞서 보고 싶은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작가 '루이'(가스파르 울리엘)는 자신이 병으로 곧 죽는다는 걸 알리기 위해 12년 만에 가족을 찾아간다. 어머니(나탈리 바예)와 여동생 수잔(레아 세이두)은 반기지만, 형 앙투안(뱅상 카셀)은 가족과 연을 끊고 살다 불쑥 나타난 동생이 못마땅하다. 신경쇠약 형수 카트린(마리옹 코티야르)은 쉽게 낯을 가리고, 시동생 루이 앞에서 자주 당황한다.

남 생각할 줄 모르며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구제 불능 가족. 불어권 영화를 대표하는 이 연기파 배우들은 말보다 침묵으로 연기한다. 악의 없이 야멸찬 엄마와 형의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힐 때 남자는 '나는 죽어가고 있다'는 말을 속에 눌러 넣는다. 침을 삼킬 때 꿀렁이는 가스파르 울리엘의 목젖은 어떤 대사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코티야르의 어깨와 목선은 모딜리아니의 모델처럼 쓰라리다. 카메라는 극단적 인물 클로즈업으로 가득 찬 스크린 위를 미세하게 회전하거나 줌인·줌아웃한다. 정교한 표현력에 멀미가 날 것 같다.

이 영화는 작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영화전문지 스크린데일리의 평론가 평점이 5점 만점에 평균 1.4점. '마미'(2014)로 최연소 심사위원상을 받으며 '칸의 황태자'로 불렸던 스물여덟 살 천재 감독에겐 치욕이었다. 많은 평론가가 스타일리시한 촬영과 음악, 감각적 화면에 '자의식 과잉'이나 '자기 복제'의 혐의를 씌웠다. 하지만 칸은 반대로 심사위원대상을 안겼다.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