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어머님, 애 학원 '설 특강' 때문에 못 가요

23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수학학원. 설 연휴를 겨우 나흘 앞두고 학원 상담 창구에 있는 직원들은 학부모들의 '설 특강' 등록과 문의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학원 직원 이모(45)씨는 "'설 연휴 기간에 특강이 있느냐'는 학부모들의 문의 전화가 지난주부터 폭주했다"며 "특강 정원이 이미 마감됐는데도, '무조건 비슷한 특강을 새로 만들어달라'는 학부모도 많다"고 말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입시학원들이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학원가는 원래 명절 연휴기간에 맞춰 사나흘씩 휴강하는 게 관행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명절 스트레스'를 피해 자녀들을 '설 특강'에 등록시키려는 학부모들이 학원으로 밀려들고 있다고 한다.

대치동에 사는 주부 심모(45)씨는 지난 17일 고등학생 외동아들의 설 특강을 등록한 뒤 경남 김해에 있는 시댁에 전화를 걸었다. 심씨는 "연휴 동안 서울에 남아 특강을 듣는 아들 뒷바라지를 하겠다"며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아냈다. 그는 "아들이 설 동안 풀어질 걱정도 없고 나도 애 밥 차려준다는 핑계로 집에 남아 있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했다. 3일 특강을 듣는 데 40만원을 썼지만 심씨는 "명절증후군을 피하는 비용으로는 싼 편"이라고 했다.

 

꼭 특강이 아니더라도 학부모들이 직접 학원 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설 연휴에도 휴강하지 말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영어학원에서 일하는 강사 박모(여·30)씨는 지난 16일 학부모 전화를 받고 난감했다고 한다. 박씨는 설 연휴 휴강에 대비해 한 달 전부터 미리 보충수업을 했는데 이 학부모는 "연휴에 정상 수업을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박씨가 "왜 그러시느냐"고 묻자 "학원 핑계 대고 시댁 안 내려가기로 했는데, 수업을 안 하면 거짓말한 게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씨는 "'저도 고향에 내려가야 해서 수업을 할 수 없다'고 말씀드려도 '하루 1시간이라도 열어달라'고 사정하시는 통에 진땀을 뺐다"며 "같은 며느리 입장에서 '명절 스트레스가 오죽 컸으면 저럴까' 싶어 이해는 간다"고 말했다.

설 특강을 찾는 엄마들에게 자녀의 대입(大入)은 명절 스트레스에 맞설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된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교육열이 높은 우리 사회에서 입시 공부라는 핑계는 보수적이고 깐깐한 시부모들도 반대할 수 없게 만드는 전가의 보도"라며 "가사노동과 자녀 교육의 책임이 모두 엄마에게 몰리는 한국 사회의 특이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자녀 핑계를 대서라도 설날에 내려가지 않는 게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방법이란 엄마들도 있다. 강남구 삼성동에 사는 주부 양모(41)씨는 "설만 되면 하루 종일 일하고 부부싸움밖에 더 하겠냐"며 "유난스럽단 소리를 들어도 애 학원 보내놓고 집에서 쉬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최근 5년간 이혼 통계'에 따르면, 명절 전후인 2~3월과 10~11월의 이혼 건수는 바로 직전 달보다 평균 11.5% 증가했다.

설 특강 수요가 늘어나자 학원들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공계 입시로 유명한 강남의 한 학원은 이번 설 연휴에 21개의 특강을 연다. 대치동 영어강사 박모(36)씨는 "명절 때 시골에 안 내려가는 학부모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에 맞춰 학원들도 매년 설 특강을 세분화해서 강의 수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