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했던 유년기 추억 그려"

고향 집 마당에 꽃밭이 있었다. 뒤뜰 장독대 옆 손바닥만 한 그곳엔 더덕과 도라지, 창포, 봉선화, 맨드라미가 철마다 꽃을 피웠다. 오래되면 인삼처럼 좋다는 더덕은 키워서 자식들 먹이려고, 청포와 봉선화는 세 딸 머리와 손톱 곱게 물들이려고, 맨드라미는 두 아들 출세시키려고 어머니가 심은 것들이다. 아, 분꽃도 있었다. 저녁 5시, 분꽃이 꽃잎을 활짝 펴면 밭에서 일하던 어머니는 "어이쿠, 저녁밥 지을 때가 됐구나" 하시며 부엌으로 달려가셨다.

그 아련한 추억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았다. 은퇴한 후 그림에 도전한 주돈식(80·사진) 전 문화체육부 장관의 솜씨다. 꽃밭을 비롯해 그간 그린 그림 40점 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제목이 '어머니의 꽃밭'(레인보우)이다. "어머니 꽃밭은 뒤뜰에, 집 앞마당엔 누나 꽃밭이 있었지요. 누나는 백합, 달리아, 장미, 채송화같이 화사한 꽃을 심었는데 저는 화려하거나 향기는 없어도 자식 생각하는 마음 간절한 어머니 꽃밭이 더 아름다웠어요."

아크릴로 그린 그의 그림은 풋풋하고 담백하다. 밝은 태양을 마주한 듯한 해바라기 그림, 씨앗으로 허공을 떠도는 모습이 꼭 자기 같아 애틋하다는 민들레 그림, 함박눈을 고스란히 맞고 있는 겨울나무의 정경…. 지난해 추석 무렵 완성한 '미래로 가는 열차'도 뭉클하다. "레일을 달려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저 열차가 꼭 우리 인생 같아서요. 한번 지나온 길은 되돌아가지 못하고, 좋고 나쁜 경치가 차창에 쉼 없이 스쳐가는 기차 인생."

'우리 집 삼보(三寶)'라는 작품도 재미있다. "어머니가 간장 담던 항아리, 누나들이 집안 대소사 치를 때 쓰던 돌절구, 한약방 하시던 할아버지가 약 지을 때 쓰시던 맷돌이 우리 집 보배지요. 이사 때마다 무겁다고 짐꾼들이 타박하지만 우리 집 전통이고 뿌리이니 이보다 값진 게 없지요."

"나무 그리기가 제일 어렵다"며 웃던 늦깎이 화가는 전시는 안 한다고 했다. 대신 고향인 충남 천안 입장초등학교에 그림을 모두 기증한단다. "시골 아이들은 그림 볼 기회가 자주 없으니까. 내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10대 유년기처럼 아이들에게 추억 한 자락 만들어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