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친척 잔소리 피해… 2030, 1주일 먼저 고향길

"설날에 내려가면 친척들이 '언제 취업하느냐'고 잔소리하시잖아요. 그게 싫어서 일찍 내려가요."

취업 준비생 김모(27)씨는 설 연휴 일주일 전인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역에서 KTX를 타고 고향인 부산에 내려갔다. 김씨는 "작년 추석 때 친척들 다 모인 자리에서 '멀쩡하게 대학 나와 왜 취업 안 하고 빈둥거리느냐'는 꾸지람을 들었다"며 "명절 때 안 내려가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미리 가서 부모님 얼굴만 뵙고 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설 연휴보다 1~2주 앞서 고향에 내려가 일찍 설을 쇠고 오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 핵가족화로 친척 간의 유대가 약해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명절을 '대가족이 모여 조상을 추모하는 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부모·자식이 오랜만에 얼굴 보는 날'로 여기는 것이다. 실제로 금요일이었던 지난 20일 저녁 서울 용산역은 설 연휴 귀성길 풍경과 비슷했다. 양손에 명절용 선물세트를 들고 기차를 타는 젊은 세대가 많았다. 명절 교통 체증을 피하기 위해 1~2주 전에 미리 성묘를 다녀오는 것처럼, 미리 설을 쇠면 기차표 예매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 것도 장점이다.

조기 귀성객들은 '친척 울렁증'을 호소한다. 지난 2015년 결혼한 김모(여·30)씨는 작년 설과 추석 때 얼굴도 잘 모르는 친척들에 둘러싸여 당황했다고 한다. 김씨는 "결혼식 때 잠깐 스쳐봤던 친척들이 몰려 '시부모 잘 모셔라'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공자님 같은 말씀만 하셨다"며 "이번 설엔 남편을 설득해서 1주일 전 미리 내려가 시부모님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고 했다. 김씨 시어머니도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가 명절 때 친척들 수발들며 일만 하다 올라가 마음이 불편했다"며 조기 귀성을 승낙했다고 한다.

부모 세대는 입장이 갈린다. 지난 21일 아산에 내려온 장남 부부를 만난 윤모(여·62)씨는 "굳이 설날에 모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스트레스받느니 서로 편할 때 만나는 게 낫다"고 했다. 반면 '그래도 명절인데 아쉽다'는 이도 적지 않다. 19일 아들 부부를 만나러 서울로 역귀성한 김모(여·72)씨는 "젊은 사람들이 가까운 친척조차 어려워하면서 명절을 피하는 걸 보면 점점 정이 메마른 사회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