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說話를 소환하다

대중문화가 설화(說話)에 빠졌다. 방송·영화·웹툰 등 대중문화 전 영역에서 설화를 각색한 콘텐츠가 인기다. 과거 설화 콘텐츠는 구미호·바리데기·오구도령 전설 등 재연에 충실한 '전설의 고향' 부류였다. 반면 판타지 열풍을 이끈 '도깨비'(tvN) '푸른 바다의 전설'(SBS) 등 최근 콘텐츠는 기존 설화를 해체해 기발한 상상력과 버무렸다. 현대극 전형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따르면서도 '재벌 3세'가 들어갈 자리에 신화적 인물을 배치해 '저승사자 로맨스' '인어 로맨스'를 그려낸다. 시즌2에 돌입한 지난해 대한민국콘텐츠대상 수상작 웹툰 '호랑이형님'처럼 호랑이형님·여우구슬·방상시 등 동양 설화들을 엮어 '제3의 설화'를 만들기도 한다.

◇설화의 해체, 캐릭터의 변주

백미(白眉)는 현대극 주인공으로 변주된 설화 속 등장인물의 '매력'이다. '푸른 바다의 전설'의 인어는 조선시대 문인 유몽인이 집필한 '어우야담'의 '만물편 인어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시청률(닐슨코리아) 16.4%로 출발해 10주째 수목드라마 선두인 이 드라마의 주역은 '인어 전지현'이다. 하루 사이 인간 언어를 습득할 만큼 명석하고, 주먹 한 방으로 적(敵)을 날려버릴 만큼 괴력인 데다 아름답다.

역대 케이블TV 최고 시청률(20.6%)로 종영한 '도깨비'엔 모델 뺨치는 신(神)들이 등장했다. 정인(情人) 만난 기쁨으로 한겨울에 꽃을 피우는 능력자인 데다 스타일도 남다르다. 도깨비(공유)와 저승사자(이동욱)가 떡국에 넣을 대파를 사 들고 굴다리를 빠져나가는 장면은 포털에서 조회 수 42만건을 올렸다. 초월적 존재들의 '브로맨스'가 드라마 흥행의 중추였다. 드라마 평론가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설화 콘텐츠의 인기는 '비범한 등장인물'이 견인한다"면서 "완전무결하되 인간적 요소를 가미해 '현실감'을 부여하고, 시청자와의 거리를 좁힌다"고 말했다.

◇'친숙함'이라는 양날의 검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을 주관하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수상작 중 '설화 콘텐츠'가 46%를 차지했다. 2012년 대상작 '반인전'은 임금이 휘하의 비밀 병력을 승려로 위장해 훈련시켰다는 '묘적사 설화', 2013년 대상작 '한주'는 고구려 왕과 백제 처녀의 사랑을 다룬 '한씨 미녀 설화'를 각색했다. 서울대 국문과 장소원 교수는 "설화의 완결성은 창작물의 완성도를 높여준다"면서 "설화는 친숙한 데다 접근도 쉬워 창작물의 단골 소재가 된다"고 말했다.

동명(同名)의 웹툰을 영화화한 '신과 함께'(감독 김용화)는 올해 출격이 예정된 '설화 콘텐츠' 기대작이다. 망자가 죽은 날로부터 49일 동안 일곱 번 재판받는 과정을 그린 작품. 불효를 심판하는 송제대왕, 입으로 지은 죄를 심판하는 염라대왕, 살인·강도 등 강력 범죄를 심판하는 변성대왕 등 전통적인 사후(死後) 세계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원작자 주호민 작가는 "설화 사이 연결고리를 만들어 하나의 세계관으로 통합하는 작업에선 설화 특유의 '친숙함'이 낯선 세계로 입장하는 '문턱'을 낮춰준다"고 했다. 하지만 이 친숙함은 독(毒)이 되기도 한다. 장소원 교수는 "상상력이 독창적이지 않으면 신선도가 떨어지고, 구시대적인 가치관에 매몰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