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가 바보 상자? 수학까지 끈질기게 풀어내는 '똑똑 상자'

'TV는 바보상자'라는 명제에 예외가 없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다. 일요일 밤 11시 방송되는 tvN '문제적 남자'가 그 예외의 대표적 사례다. 머리 좋은 연예인들이 모여 게스트와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수학, 과학, 추리, 창의력 등 다양한 문제를 푼다. 포맷은 단순한데, 묘한 중독성을 뿜어낸다. 벌써 100회다.

지루하거나 골치 아플 것만 같은 이 프로그램이 여기까지 오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시청률은 꾸준히 오르고 있고, 서울대 치대 출신 가수 겸 배우 김정훈이 출연했던 지난 8일 방송은 최고 시청률 4%(닐슨코리아·유료플랫폼 기준)를 찍었다. 지난 26일 열린 100회 특집 방송 녹화 현장(방송은 2월 19일 예정)을 찾아가 비결을 알아봤다.

①다 풀어야 집에 간다

100회 특집 방송에는 고정 출연자 전현무, 하석진, 김지석, 이장원, 타일러 라쉬, 박경 외에 일반인도 참여했다. 오전 11시 시작한 녹화가 오후 10시 다 되어서야 끝났다. 문제가 주어지면 쥐죽은 듯 집중해서 푼다. 아무 소리 들리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러다 누군가 문제를 풀어내면 열광의 도가니가 됐고 틀리면 탄식이 쏟아졌다. 마치 축구경기장에 와있는 듯했다.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용 대본이 없다. 제작진이 힌트를 주지도 않는다. 촬영 현장에선 보통 10문제를 풀고 그중 절반 정도가 방송에 나간다. 문제 하나 푸는 데 3시간씩 걸린 적도 있다고 한다.

이근찬 PD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나오는 반응, 한계치에 다다랐을 때 드러나는 본성 같은 것까지 담아내기 위해 문제를 다 풀지 않으면 촬영을 끝내지 않는다"며 "처음엔 힘들어하던 출연자들도 문제 풀이에 성공했을 때 희열을 몇 차례 맛보고 나서는 룰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②곳곳의 '천재'를 수소문해 초대

카이스트 출신 가수(이장원), 멘사에 가입한 아이돌(박경) 등 고정 출연자들의 스펙도 화려하다. 여기에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이들을 매주 게스트로 초대한다. 연예인은 물론 수능 만점자, 하버드대 토론왕, 애니메이션 촬영감독, 셰프까지 다양하다.

게스트와 함께 문제 푸는 과정을 통해 사고방식이나 접근법, 인생의 여러 문제를 넘어온 경험 등을 이야기한다. 이 PD는 "나이 어린 게스트나 개그맨들이 문제를 좀 더 빠르게 파악하고 입체적이고 유연한 사고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③초등학생과 엄마가 함께 푸는 문제

제작진이 가장 공들이는 것은 '출제'다. 방송에 등장하는 문제들은 어려운 공식을 대입하거나 고학력자만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정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남들이 생각해보지 않는 방향으로 접근했을 때 쉽게 풀리는 문제가 많다. 이런 문제를 찾기 위해 책과 문제집, 인터넷을 샅샅이 뒤지고 필요한 경우 전문가에게 자문하여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출처는 "며느리에게도 안 가르쳐주는 비밀"이라고 제작진은 말했다. 방송에 나온 문제를 모아 책을 내자는 요청이 쇄도하고, 열성팬들은 직접 문제를 만들어 제작진에게 보내오기도 한다.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다루지만 유독 수학 관련 문제에 가장 큰 반응이 쏟아진다고 한다. 전혀 생각 못 하던 접근 방식을 누군가 보여줬을 때 그 효과가 가장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문제적 남자'에서 말하는 '문제'란 뭘까. 이 PD는 "세상 산다는 게 결국 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슬기롭게 헤쳐나갈 방법을 같이 찾아보는 거죠.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문제를 푸는 데 정해진 한 방향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아요. 전혀 다른 해답이 제시되거나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얘기가 나와 고민에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