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의 '제3지대 불지피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설 연휴 첫날인 지난 27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시작으로 29일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30일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와 잇달아 만나 이른바 '제3지대' 구성 문제를 논의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2일 귀국 이후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등도 만났다.

반 전 총장 측은 이날 "정치권의 대표적인 '제3지대론자'들을 만나본 결과 친박·친문 패권 청산을 위해 제3지대에서 뭉치자는 대원칙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다만 반 전 총장의 정치적 진로 문제를 놓고는 각자의 입장이 엇갈려 일단 별도 세력화를 추진하면서 단계별로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과 연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오전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와 만나 분권형 개헌 등 연대 문제를 논의했다. 박 대표는 회동 뒤 기자 간담회에서 "반 전 총장이 국민의당 입당을 노크해도 지금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다"고 했다. 반 전 총장이 지금처럼 범여권 출신 인사들과 독자 세력화를 추진한다면 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전달했다는 얘기다. 반 전 총장은 새누리당에 입당할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고 박 대표가 전했다.

박 대표는 다만 "이번 대선에서 개혁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는 데 반 전 총장도 동의했다"면서 "반 전 총장이 어디로 가건 그가 결정할 문제지만 강한 태도 변화가 있는 것이 좋을 것이며 (태도 변화가 있다면)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주시하겠다"고 했다. 앞서 27일 반 전 총장과 회동한 손학규 전 대표도 회동 뒤 "반 전 총장이 수구 세력과 같이 간다면 우리는 같이 갈 수 없다고 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반 전 총장은 "보수와 진보를 다 아울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반면 29일 반 전 총장과 회동한 김무성 의원은 반 전 총장에게 바른정당에 입당해 당내 경선을 거쳐 제3지대 연대에 나서는 게 어떠냐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다만 반 전 총장 측 관계자는 "김 의원은 반 전 총장이 당분간 당 밖에 머물며 별도 세력화를 추진하더라도 '큰 틀에서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는 차원에서 양해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한 측근은 "반 전 총장으로선 중도로의 외연 확장 못지않게 보수 통합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캠프 내에선 독자 세력화를 통해 힘을 키운 뒤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과 연대하는 '반기문식 자강론'이 여전히 우세하다"고 했다. 반 전 총장 측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권영세 전 의원을 새로 영입하고 조만간 사무실을 서울 마포에서 여의도 국회 근처로 옮기는 등 캠프를 확대 개편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