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건 체험과 상실감… 소설로 치유하다

곡식을 훔치다 홧김에 체제를 흉본 죄로 북한 노인이 요덕수용소에 수감된다. 내내 울기만 하던 노인은 감방 동지인 한 청년에게 "고향 집에 금덩이 두 개를 묻어놨으니 꼭 찾아가 가족에게 소식을 알려주라"고 말하곤 죽는다. 청년은 훗날 그 집을 찾아가지만 마주한 풍경은 희망을 차단한다. 표제작 '금덩이 이야기'를 쓴 함경북도 청진 출신 이지명(64) 국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은 "김정일의 경호원이었던 이영국씨에게 들은 얘기를 가공해 썼다"며 "소설이라야 비로소 전달 가능한 감정의 진통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작가의 메시지는 맨 마지막 문장. '밖에서는 우르릉 뇌성이 울었다.'

탈북 작가와 남한 작가 13인의 공동 소설집 '금덩이 이야기'가 출간됐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후원을 받아 서울대 방민호 교수 등이 의기투합해 2015년 낸 공동 소설집 '국경을 넘는 그림자'에 이은 두 번째 작품. 2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한 방 교수는 "전편보다 사실성을 강화하고 박덕규·유영갑·이경자·이대환·정길연 등 그간 북한 문제에 지속적 관심을 쏟아온 국내 작가들의 조명에도 신경 썼다"면서 "시리즈로 계속 내고 공동 시집 출간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설은 궁핍에서 비롯된 비극뿐 아니라 탈북 과정과 그 이후의 상실감까지 파고든다. '붕어빵을 굽는 여자'의 탈북 여성 영희는 고향 양강도에 있는 어머니와 큰딸을 남한으로 데려오기 위해 붕어빵 장사를 해가며 번 4만5000위안(약 760만원)을 보내지만 상봉은 이뤄지지 않는다. 노동당원인 아버지를 남겨둔 채 탈북한 모녀('밥')와 에티오피아 주재 북한 대사의 아들이 남한행을 택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코뿔소년') 역시 이 같은 가족 해체의 정서를 다룬다.

북한과 탈북자를 향한 남한 사회의 시선을 다룬 '나도 모른다'(이경자), '시간여행'(방민호), '조선족 소녀'(박덕규) 등도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2006년 탈북한 김일성대 출신 도명학(52) 작가는 "남한 작가는 북한을 잘 모르고, 탈북 작가는 한국의 문화 취향을 모른다"며 "둘이 서로 힘을 합치면 통일을 앞당기는 질 좋은 작품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