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클러·화재경보기 일부러 꺼놨다

지난 4일 경기 동탄신도시의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 메타폴리스 부속 상가에서 사망자 4명 등 51명의 사상자를 낸 화재는 예고된 인재(人災)였다. 화재가 나기 사흘 전부터 건물의 화재경보기 및 유도등, 스프링클러 등 소방 안전 시설이 꺼져 있었다는 사실이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어린이 놀이 시설을 철거하면서 용접(절단) 작업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스프링클러 등이 작동할까봐 건물 화재 유지관리 담당 직원이 일부러 그랬다는 것이다. 이 직원은 "상가 건물은 왕래하는 사람이 많아 매장 공사로 경보기 등이 작동하면 대피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날 위험이 있어 1일 오전에 수동으로 작동 정지 시켰다"면서 "4일 오전 11시쯤 불이 나자 5분 만에 다시 스프링클러, 경보기 등을 켰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하지만 결국 소방 시설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 바람에 불은 다른 점포로 번지지 않고 80평(264㎡) 규모의 테마파크만을 태우고 한 시간 만에 꺼졌는데도 강모(27)씨 등 4명이 사망하고 47명이 유독가스 흡입 등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을 만큼 피해가 커졌다. 이 상가는 화재 이틀 전 화성소방서에서 개최한 '화재 취약 대상 안전환경 조성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곳이기도 했다. 5일 현장 감식을 한 경찰은 불이 시작된 공사 현장에서 안전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보고 조사에 착수했다. 전문가들은 "화재를 대비한 안전 시스템을 소홀히 하면 작은 화재로도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안전 수칙 안 지키는 후진적 행태 반복돼

불은 4일 오전 11시쯤 4층 건물의 상가 3층에 있는 '뽀로로 테마파크'를 철거하는 작업 도중 일어났다. 현장에선 산소 절단기와 가스 용기가 발견됐다. 소방 당국은 용접(절단) 작업 중 튄 불꽃이 인근에 있던 가연성 재료로 튀어 불이 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불길이 테마파크 내부 시설물들에 쓰인 스티로폼과 나무 등 현장의 가연성 자재에 옮겨붙으면서 급속히 유독가스가 대량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로 숨진 4명은 모두 이 유독가스에 질식했다고 추정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매뉴얼에 따르면 용접 작업을 할 때 화기(火器) 감시자를 두고 소화기나 불티 방지막, 모래 양동이 등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서 소화기 외의 별다른 안전시설을 아직 발견하진 못했다"고 말했다.

◇화재안전 대회 1등? 대피 방송까지 20분

화성소방서 문영숙 예방교육훈련팀장은 "이 상가 건물은 2일 경진대회에 참가했던 관내 8개 업체 중 화재 시 대피 계획과 (화재 대비) 직원 훈련 계획 부문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1등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불이 나자 큰 피해가 났다. 건물 관리자 측의 대처가 미흡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소방 당국은 화재 발생 후 20분이 지난 11시 19분에야 상가에서 대피 안내 방송이 나왔다고 밝혔다. 소방서가 11시 1분 신고를 접수해 3분여 만에 도착했음에도 건물 방재실 담당 직원들은 대피 방송을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대피 골든타임'을 놓쳤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사망자 중 강모(여·27)씨와 고객 강모(44)씨는 테마파크 바로 옆에 있는 두피클리닉센터 내부에서 발견됐다. 불이 났다는 사실을 몰라 안에 갇히는 바람에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피하기 힘든 건물 구조도 문제

화재 당시 다섯 살 난 아들과 함께 상가 3층 소아과 병원에 있던 박두현(29)씨는 "밖에서 아주머니가 '불이야'라고 소리치는 걸 듣고 아들을 안고 비상계단으로 내달렸다. 1층으로 빠져나올 때까지 대피 방송은 물론 스프링클러와 방화 셔터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복잡한 건물 구조도 피해를 키웠던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준공된 메타폴리스는 1266가구가 살고 있고 화재가 발생한 상가엔 대형 마트와 영화관 등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하지만 건물 중앙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그 주변에 상가들이 자리 잡은 구조다. 상가에 있던 손님 등 많은 사람이 상가 출구를 찾지 못해 3·4층에서 창문을 깨고 소방서 구조대가 건물 밖에 설치한 에어 매트로 뛰어내렸다. 상가와 연결된 아파트 주민들도 놀라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인세진 교수는 "최근에 지어진 일부 대형 주상복합 건물이나 상가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좁은 공간에 매장을 많이 넣는 구조"라면서 "건물을 설계하는 단계부터 화재 등 재난 시 피난 용이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