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평(三視世評)] 13년 공백 무색한 그녀, 끝까지 빛날까

신사임당(1504~1551)을 주인공으로 드라마를 만든다는 건 쉽지 않은 도전이다. 현모양처, 서화(書畵)에 능한 예술가였던 그의 삶엔 롤러코스터처럼 극적인 장면이 별로 없어서다. 삶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였던 이순신과 달리 신사임당을 내세운 드라마나 영화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SBS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는 이런 한계 앞에서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신사임당도 아내나 어머니이기 전에 뜨거운 사랑과 열정을 품은 여성이었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산수화를 잘 그렸던 화가이자, 무능한 남편 대신 집안 경제를 이끄는 워킹맘이었다는 데 주목한다.

드라마가 그려가는 사임당은 5만원짜리 지폐 속 무표정한 초상화와는 다르다. 어린 시절 사임당은 안견의 그림을 보기 위해 남의 집 담장까지 뛰어넘는다. "어찌하여 여인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그리도 많단 말입니까?"라고 묻는 당돌한 소녀다.

위인의 삶을 픽션으로 왜곡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신사임당 일생을 턱없이 부족한 사료만을 바탕으로 복원하기는 어차피 불가능하다. 널리 알려진 이미지의 상당 부분은 조선 시대 유교 이념이나 일제강점기 전시 동원 체제 등 시대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작가는 자칫 고루할 수 있는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해 조선 시대와 21세기를 교차시킨다. 이영애가 사임당과 현대의 미술사 강사 서지윤 역을 둘 다 연기한다. 과거와 현재가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된다는 작가의 설명처럼 신사임당과 서지윤의 삶은 별개인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맞물린다. 1인 2역이 버거울 법도 한데, 이영애의 연기는 녹슬지 않았다. "서지윤이 교수 자리를 얻으려고 지도 교수 집들이에 음식을 해다 바치고 칫솔 심부름까지 하는 장면이 리얼했다."(김윤덕 기자) "서지윤의 삶이 신사임당이라는 인물에 자연스럽게 겹치도록 설정한 영리함이 돋보인다."(채민기 기자) 반면 최수현 기자는 "현대 부분은 아주 트렌디해야 재미와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 텐데 조선 시대보다 현재 장면이 오히려 더 낡고 따분하게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천재 예술가였던 사임당 덕에 색다른 볼거리도 생겼다. 미인도부터 관음보살도, 금강산도까지 다양한 그림들이 화면을 채운다. 어지간히 잘 만들어서는 이제 눈길 끌기 어려운 전투 장면과는 또 다른 장관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13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온 이영애의 매력이 시청자들 가슴을 설레게 한다. "아침 하늘빛처럼 투명한 듯 푸른 한복 입은 자태가 압도적이다."(최수현 기자) "아줌마도 송승헌이 아니라 이영애 때문에 이 드라마 본다."(김윤덕 기자) "공백기만큼 기품이 더해져 '대장금' 시절보다 더 매력적이다."(채민기 기자)

아직 이영애가 연기하는 조선 시대 신사임당이 본격 등장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청률은 2회 16.3%를 기록했다가 4회 12.3%까지 내려갔다(닐슨코리아). 30부작 드라마엔 좋지 않은 신호다. 이 의미 있는 실험이 걸작으로 남으려면 주체적 여성상이든, 애절한 사랑 이야기든 '이영애는 예쁘다'는 감상을 뛰어넘을 촘촘한 스토리라인과 묵직한 감동이 필요하다. "더 이상 여자들의 궁중 암투, 왜곡된 권력욕으로 칠갑된 '장희빈' '장녹수'류의 사극은 보고 싶지 않다"(김윤덕 기자)는 기대처럼 시청자 입맛이 날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