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누구나 받는 개근상? 한 반 절반도 안돼

"개근상 수상자, 3학년 4반 이○○ 외 66명. 대표 학생 앞으로 나와주세요."

지난 3일 열린 서울 용산고등학교 졸업식에서 개근상 대표 수상자가 단상에 오르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개근상을 받은 66명은 전체 졸업생 418명의 16%였다.

개근상을 받은 김모(19)군은 "3년간 성실히 학교 다녔다는 걸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하다. 개근상 수상을 부러워하는 친구도 많다"고 말했다. 졸업식에 참석한 학부모 심모(50)씨는 "내가 학교 다닐 땐 개근상을 못 받은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는데, 요즘은 많이 변한 것 같아 신기하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장만큼이나 많았던 개근상장이 사라지고 있다. '우등상은 못 받아도 개근상은 탄다'는 우스개도 옛말이 됐다. 본지가 8일 취재한 서울 소재 고등학교 10여곳 중 올해 졸업생 가운데 개근상 수상자가 절반 이상인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양천구 양천고의 개근상 수상 비율이 36% 정도로 높은 편이었다. 강서구 대일고와 서울 용산고는 16%에 그쳤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정확한 통계는 집계하지 않지만 최근 몇 년간 개근상 수상 비율이 현격하게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학교 출석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의 인식 변화가 개근상이 귀해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배문고 정영수 교감은 "예전엔 부모들이 '아무리 아파도 학교는 가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자녀가 조금만 아파도 병원 진단서를 내고 결석이나 조퇴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고3 학부모 김모(45)씨는 "감기 걸린 애를 굳이 학교 보냈다가 반 친구에게 옮기기라도 하면 다른 엄마들로부터 항의 전화가 온다"며 "진단서를 제출하면 결석해도 내신 점수가 깎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출결 사항이 대입의 당락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점도 개근상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현 대입 제도는 3학년 1학기까지의 성적만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2학기 수시전형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만기 유웨이 중앙교육소장은 "수시에 합격한 학생들은 최소 수업 일수만 채우면 졸업하는 데 문제가 없다"면서 "수시에서 중요한 학생부 종합평가에서도 '무단결석'이 아니면 결석했다고 내신 점수가 깎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교 교사들에 따르면 학생들이 설령 가출이나 고의적 출석 거부 등 합당하지 않은 사유로 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사후에 병원 진단서를 첨부해 결석계를 내면 무단결석으로 기록되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의 고3 담임 교사 최모(42)씨는 "무단결석인지 질병에 의한 결석인지 판단하는 권한은 담임에게 있지만, 진단서까지 끊어온 학생을 무단결석으로 처리하긴 쉽지 않다"며 "학부모들 사이에선 '애들이 학교 가기 싫어하면 일단 병원에 보내 진단서부터 끊어라'는 말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부 교사는 2012년부터 지방교육청별로 시행된 학생인권조례를 개근상이 줄어든 원인으로 들기도 했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한 고등학교 교감은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후부터 학생들이 '몸이 아프니 결석하겠다'고 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개근상이 희소해지다 보니 이를 토익 점수처럼 '스펙'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 소재 주요 사립대학의 입학사정관을 지낸 환일고 이정철 교감은 "대입 응시자들의 점수가 같을 땐 개근상을 받은 학생을 뽑는 경우가 많다"며 "개근상이 성실하게 학교에 다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