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원가 절감"

"침대 매트리스에 120kg의 날카롭게 깎인 롤러를 올려 10만 번을 굴립니다. 며칠 동안 비를 맞히고 영하 20도의 혹한에 방치하기도 합니다. 그러고도 멀쩡해야 팔아도 욕은 안 먹겠다는 안심이 듭니다."

지난 8일 서울 논현동의 시몬스 갤러리에서 만난 안정호(46) 시몬스 대표는 "세계에서 가장 기술에 집착하는 침대 회사를 만드는 게 회사의 목표이자 나의 꿈"이라며 "진짜 좋은 침대 만들기에 집착하는 건 일부 유전(遺傳)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에이스침대 창업자인 안유수 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시몬스는 동명(同名)의 미국 시몬스에서 회사 이름과 브랜드를 가져왔지만 서로 지분 관계는 없는 별개의 회사다. 형 안성호 대표가 맡고 있는 에이스침대와도 계열 관계가 전혀 없다. 안 대표는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신제품 연구개발과 제조를 진행하며 올가을에는 현재의 연구개발연구소를 아시아 최대 규모로 확대한다"고 말했다.

"미국 침대 회사들은 지난 20여년간 대주주가 자주 바뀌면서 기술 개발보다는 이윤 추구에 매달렸습니다. 유럽의 침대 회사들은 여전히 수천만원짜리 수제 침대를 만드는 데 머물고 있고요. 일본에도 시몬스처럼 침대에 연구개발비를 쏟아붓는 회사는 없습니다."

안 대표는 "이걸 한번 찢어보라"며 매트리스의 재료인 부직포를 건네줬다. 시몬스의 포켓스프링을 싸는 헝겊이다. 그는 "웬만한 천은 2~3년만 지나면 스프링과의 마찰 때문에 마모되고 찢어져 매트리스의 탄력성이 나빠진다"면서 "시몬스가 쓰는 부직포는 일반 부직포에 비해 5~6배나 비싸지만 그만큼 내구성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우리 회사에서는 '원가 절감'이라는 말을 못 하게 합니다. 침대에 쓰이는 모든 재료를 다 펼쳐놓고 신제품 콘셉트에 가장 맞는 재료를 고르게 합니다. 원가 산정은 그다음입니다."

그는 "미리 제품 가격을 정해 놓으면 수익성을 위해 저렴한 재료를 쓰게 된다"면서 "이를 막기 위해 작업 순서를 바꿔 놓았다"고 했다. 제품 출시 시기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1930여 항목의 자체 검사와 정부의 친환경 인증을 모두 받은 뒤에 출시 시기를 정한다.

시몬스는 국내 5성급 이상 특급호텔 침대 시장에서 점유율 50%를 넘겼다. 호텔신라, 롯데호텔 소공동 본점, 포시즌스 등 유명 호텔에는 거의 대부분 시몬스 침대가 들어가 있을 정도다. 그는 "10여년 전 호텔 침대 시장에 처음 진출했을 때 '초짜'인데도 해외 유명 경쟁사보다 납품 가격을 더 높게 써냈다"며 "내구성이 더 우수하다고 설득했지만 처음엔 믿어주지 않아 고전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2004년 6성급인 W호텔(현 워커힐비스타)에 침대를 공급했고, 이후 소문을 타고 급성장했다.

시몬스는 고급 침대 시장을 공략한 덕분에 지난 6~7년 동안 매년 15~20%씩 매출이 증가했다. 작년에는 180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렸다. 1위인 에이스침대와 차이가 거의 없을 만큼 바싹 따라붙었다.

안 대표는 그러나 "매출이 늘 때보다 우리 침대의 진가를 확인할 때 더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침대의 진가를 알아보기 위해 폐기되는 침대도 뜯어보고 상태를 점검한다. 최근 워커힐호텔에 공급했던 침대 매트리스가 10년을 꽉 채우고 폐기 처분되자 그는 전량 수거해 일일이 뜯어봤다고 한다. 그는 "호텔은 침대 매트리스에 가장 혹독한 환경"이라며 "스프링 상태와 각종 재료의 마모, 탈색 등을 살펴봤는데 여전히 충분히 쓸 만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침대만 보고 자랐고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침대라고 생각해 이 길을 택했습니다. 중견기업들은 규모가 커지면 다른 사업으로 확장하는 게 상식처럼 됐지만, 저는 끝까지 침대 하나만 할 생각입니다." 그는 "세계 침대업계 종사자들이 기억하는 이름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