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反이민에… 23조원 '오일 머니' 등돌리나

지난달 말 미국 뉴욕 최대 부동산 중개업체인 코코란(Corcoran)그룹이 진행하던 수백억원대 건물 매매 거래가 성사 직전 갑자기 중단됐다. 브루클린 지역 타운하우스 11개 동을 한꺼번에 사는 내용이었는데 문제는 이 매수인이 이슬람 국적이었던 것. 이 이슬람 국적 매수인이 "트럼프 정부 이민 관련 후속 발표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다"고 통보하면서 거래가 중단됐다. 이 같은 사실은 미 부동산 전문 매체 '더 리얼 딜(The Real Deal)'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이처럼 미국 부동산 시장이 '트럼프발(發) 충격'에 술렁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테러 위험이 있다'고 지목한 중동 7개국 국민을 상대로 반(反)이민 행정명령을 내리자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높은 주요 도시에서 부동산 거래 중단이 잇따르고, 연간 최대 23조원으로 추정되는 중동발(發) 미국 부동산 시장 투자 자금이 이탈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현지 부동산 시장에선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이 중동에서 오는 미 부동산 투자를 위축시킨다면 미국 전역 부동산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주택 시장에서 철수하는 이민자들

트럼프 대통령이 반이민 행정명령을 내린 뒤 미국 입국 비자 10만여건이 취소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법원이 제동을 걸었지만 같은 행정명령을 또 한 번 발동해 법원 조치를 무력화하겠다는 태도. 사실 행정명령 대상 7개국은 이라크와 시리아·이란·소말리아·수단·예멘·리비아 등 대부분 빈국(貧國)이다. 이란 정도가 '10년간 적어도 85억달러(약 10조원) 이상을 해외 부동산에 투자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나라. 그러나 문제는 7개국 출신만 불안감을 느끼는 게 아니란 데 있다.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실리콘밸리에 집을 사려고 6개월간 알아보다가 이달 초 계획을 취소한 인도 출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부부 사례를 소개하면서 "실제로 주택시장에서 철수 중인 대다수 이민자는 7개국 이외 국가 출신들"이라고 전했다. 이는 '트럼프가 기본적으로 모든 이민자, 특히 중동 지역 이민자 전체에 적대적이며, 언제라도 추가적인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기류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민자들은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핵심 수요자들이다.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미 최대 부동산 정보 제공업체 레드핀(Redfin)이 미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2~2015년 '이민자 인구 비중이 10% 미만인 도시' 집값 상승률은 8%였지만 '20%를 초과하는 도시'는 22%에 달했다. 이민자들은 주택 소유욕도 강해 2000~2014년 미국 출생자 주택 소유율은 4.1%포인트 줄어든 반면 이민자 주택 소유율은 2%포인트 늘었다.

◇중동 투자금, 영국 등으로 이탈 움직임

작년 상반기 중동 투자자들이 전 세계 부동산에 투자한 돈은 100억달러(약 11조5000억원). 1년으로 치면 23조원 수준이다. 이 중 90%가 사우디아라비아·바레인·쿠웨이트 등 소수 부국에서 나오지만 이번 조치로 미국으로 향하려던 투자금 일부는 영국·캐나다 등 투자 가치가 있는 다른 대체국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기업 CBRE에 따르면 중동계 투자자는 2015년 1월부터 작년 상반기까지 뉴욕시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68억달러(약 8조원)를 투자했다. 같은 기간 로스앤젤레스에는 10억달러, 마이애미에 5억달러를 투자했다. 뉴욕에 있는 부동산 컨설팅 기업 PD프로퍼티스의 데이비드 박 부사장은 "중동계 자금 철수가 지속되면 뉴욕 등 대도시 하반기 부동산 경기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