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만들어도, 창구 입출금도… 돈 내라는 은행

씨티은행이 '계좌유지 수수료'를 다음 달부터 부과키로 한 데 이어, KB국민은행이 '창구거래 수수료'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일부 은행은 '통장개설 수수료' 신설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은 "수수료 도입으로 인터넷·모바일·자동화기기(ATM) 거래가 늘면 은행 비용이 절감돼 고객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은행 수수료가 미국·영국·일본 등에 비해 낮은 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은행들이 비용을 줄이거나 부가가치 높은 새 수익원을 찾아내는 노력은 게을리하면서 손쉬운 돈벌이 수단인 수수료 인상에만 매달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씨티 '계좌유지 수수료' 국민 '창구거래 수수료'… 줄줄이 신설

국민은행은 14일 "거래 잔고가 일정 금액 이하인 고객 등이 지점 창구에서 입출금 거래 등을 하면 '창구거래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입 시기, 부과 대상과 액수 등은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국민은행이 추진 중인 '창구거래 수수료'는 씨티은행이 다음 달 8일부터 부과하는 '계좌유지 수수료'와 비슷한 형태다. 씨티은행은 입출금이 자유로운 예금에 새로 가입하는 고객에게 이 수수료를 물린다. 매달 마지막 영업일에 거래 잔액이 1000만원 미만이면 월 5000원을 수수료로 내야 한다. 예외도 있다. 모바일·인터넷·ATM 거래고객, 60세 이상, 장애인 등은 수수료 부과 대상이 아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통장개설 수수료를 검토하는 은행들도 있다"고 했다. 통장을 새로 내는 고객에게 신청서 작성, 통장 제작, 체크카드 발급 등에 드는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수수료 형태로 내도록 한다는 얘기다.

◇"미국·영국·일본보다 수수료 낮아"

우리나라 은행 수수료는 미국·영국·일본 등과 비교하면 수수료 종류도 적고 액수도 낮은 편이라는 게 금융연구원 연구 결과다. 창구에서 송금할 때 수수료의 경우, 국내 은행은 500~3000원으로 미국(약 4만원)·영국(약 3만6000원)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일본(약 6500~8700원)과 비교해도 절반 이하다. 온라인뱅킹 송금 수수료도 국내은행(무료~600원)이 미국(약 2만~2만8000원)·영국(약 3만6000원)보다 훨씬 낮다.

수표발행·증명서발급 수수료도 국내 은행이 싼 편이다. 국내은행의 자기앞 수표 발행 수수료(무료~500원)는 미국(약 1만1400원)의 20분의 1 수준이다. 증명서 발행 수수료도 미국·영국·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다만 수표 용지 교부 수수료는 우리나라가 미국·일본보다 2배 이상 높다.

◇"은행, 비용절감 노력 없이 쉬운 돈벌이에 매달려"

은행들의 수수료 신설 움직임에 대해선 고객들의 정서적 반발이 크다. 서울 강남에 사는 은퇴자 김모(75)씨는 "인터넷을 못 해서 반드시 은행 지점을 찾아가 거래를 하는데 수수료를 내라고 한다면 수십 년 이용해 온 은행과 거래를 끊어버릴 것"이라고 했다. 은행들이 돈벌이가 되는 고액 자산가 고객들에게 집중하기 위해 소액 고객을 솎아내는 수단으로 계좌 유지 수수료나 창구 거래 수수료를 도입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수원에 살고 있는 자영업자 임모(47)씨는 “안 그래도 대출 금리가 올라 속상한데, 앞으로는 돈 없으면 은행 지점에 오지도 말라는 소리 같아 무척 서운하다”고 했다.

은행들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거나 고부가가치의 새 수익원을 찾아내는 노력은 제대로 하지 않고 손쉽게 수수료만 올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오래된 얘기다. 창구거래 수수료 도입을 추진 중인 KB국민은행은 작년 한 해 동안 희망퇴직 비용으로 8072억원을 썼다. 퇴직자(2800명) 1인당 2억8800만원의 보너스를 준 것이다. 금융소비자원 조남희 대표는 “은행들의 수수료 신설 움직임은 ‘낮은 가지에 달린 과일 따 먹기’ 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다. 해외 진출이나 경영 혁신을 통해 새 수익원을 개발하고, 고객 서비스 품질도 더 높이는 고민과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