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 디자인과 꽃의 '異種 결합'… 도시농업 개척하다

경기도 화성시 수원여대 창업보육센터 뒤편 공터. 1000㎡(약 300평) 땅에 각양각색의 화분 300여 개가 놓여 있다. 소나무와 산딸나무, 이팝나무를 기르는 곳이다. 거기서 두 남자가 나무들을 보며 대화를 주고받는다.

"화분 모양에 따라 식물의 성장 속도가 다릅니다. 식물별로 가장 잘 맞는 화분을 개발하면 도시에서도 좀 더 쉽게 나무나 채소를 기를 수 있겠죠?" (정준래씨)

"물 빠지는 구멍의 위치와 개수, 돌기의 패턴, 화분의 재질을 바꿔서 다양한 디자인의 화분을 만들었어요." (정윤섭씨)

정윤섭(47)씨와 정준래(36)씨는 도시 농업 회사 '더푸른'의 공동 창업자다. 정윤섭씨는 자동차 디자이너 출신이고, 정준래씨는 플로리스트 출신인 화훼 전문가다. 서로 다른 재능을 합쳐 도시 농업이라는 이색 사업 분야를 개척했다. 건물 옥상이나 주차장에 예쁜 텃밭, 정원을 만드는 사업을 한다. 각자 전공을 살려 화분이나 자재 디자인, 텃밭 설계는 정윤섭씨가 맡고, 나무와 채소를 심고 기르는 것은 정준래씨가 한다. 임직원 4명의 작은 회사지만 "식물을 잘 아는 디자이너팀"이란 소문이 나면서 사업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종(異種) 전문가가 뭉치니 이색(異色) 사업 탄생

원래 정윤섭씨는 현대자동차의 스포츠형 세단 티뷰론 터뷸런스의 디자이너였다. 차가 출시된 1999년 독특한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던 스포츠카였다.

정준래씨는 플로리스트 자격과 원예치료 석사학위를 가진 청년 원예 전문가로서 식물을 키우는 데 일가견이 있다. 두 사람이 만나니 농업과 디자인을 접목한 도시 농업이란 이색 사업이 개척됐다.

두 사람은 2006년 3년제 대학인 한국농수산대학 화훼학과에 입학하면서 처음 만났다. 정준래씨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지만 플로리스트 자격증을 딸 정도로 원예에 푹 빠져 있었다. 현대자동차, LG전자에서 근무한 정윤섭씨는 "차가운 산업디자인에 염증이 났다"며 "디자인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어 도전했다"고 했다.

우연하게 화훼학과 동기가 된 두 사람은 2007년 옥상 정원을 꾸미는 업체에서 실습수업을 들으며 공동 창업을 결심했다. 당시로선 생소한 도시 농업 사업을 해보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일단 정윤섭씨가 1000만원을 내고 정준래씨가 승합차를 구해와 개인 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2010년 12월 지금의 법인을 설립했다. 정준래씨가 회사 대표를, 정윤섭씨가 실장을 맡았다.

히트 상품은 나무를 짜서 만든 이동식 텃밭이다. 누구나 손쉽게 조립한 뒤 흙을 채워 채소를 키울 수 있게 만들었다. 옥상에 흙을 깔고 텃밭을 만들면 천장이 갈라지고 물이 새는 문제점도 해결한 제품이다. 개발하고 특허를 받는 데 2년이 걸렸다. 이 기술로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도 탔다. 정윤섭씨는 "수십 번 실험을 반복한 끝에 우리나라 한옥의 짜임 기법을 접목시켜 개발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유치원이나 학교, 병원 등에서 주문이 밀려와 2011년 창업 1년 만에 매출 2억1000만원을 올렸다. 이후 연 매출이 3억원대까지 치솟았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사업 성공 못 했을 것"

하지만 조경업체, 꽃집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며 블루오션은 곧 레드오션이 됐다. 특허를 냈지만 비슷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후발 주자 중엔 망하는 곳도 생겼다. 이 와중에 더푸른은 차별화된 설계와 디자인을 무기로 탄탄히 버티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억5000만원. 도시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세련된 도시 농업 자재를 파는 소매 매장을 여는 등 사업 다각화에도 나섰다. 바람에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한 화분 받침대, 흙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화분 등도 개발했다. 치매 전문 병원 옥상에 이동식 텃밭을 설치하고 1년간 치매 노인들을 대상으로 원예 치료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정준래씨는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설계와 디자인, 자재 판매까지 모든 것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강점”이라고 했다. 정윤섭씨는 “보통 원예만 해온 조경업체는 따라올 수 없는 것을 많이 도전하고 있다”며 “요즘 자동차도 ‘하이브리드(전기와 가솔린을 결합한 차량)’가 인기 아니냐”고 했다.

두 사람은 한 명만으로는 이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정준래씨는 “형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원예업체에 취업해 직장인이 됐을 것”이라며 “원예만으로 창업하기엔 시장이 너무 열악하다”고 말했다. 정윤섭씨는 “생태 디자인의 꿈을 이룬 것은 원예 전문가인 정 대표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동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강점이 없는 두 사람이 친하다는 이유로 동업하면 필패(必敗)합니다. 서로 다른 분야 전문가들이 힘을 합치면 시너지 효과가 나고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사업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