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기에 바친 1000만원… 문학인생 2막을 건져올리다

뽑는다, 고로 존재한다. "인형 뽑기는 수렵이에요. 손끝에 집중하는 순간 어떤 잡념도 틈입을 불허합니다."

뽑기는 소설가 우광훈(48)씨에게 일종의 생존적 몸부림이었다. 어느 날 허리의 철사가 끊어지는 느낌이 왔다. 2013년이었다. "신경뿌리 손상이라더군요." 수술 치료는 불가능했고,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하루 5~6시간씩 집에서 맨몸 운동을 하는 지루한 나날이 시작됐다. 그러다 이듬해 운명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초등학생 딸과 골목길을 산책하다 인형 뽑기 기계를 봤죠. 그 안에 유명 캐릭터 인형이 하나 들어있었고요." 딸의 눈빛을 읽은 우씨는 호기롭게 1000원짜리 지폐를 기계에 밀어 넣었다. 단 한 방에 인형이 수중에 들어왔다. 재능에 눈뜬 그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우씨는 최근 자신의 경험을 담은 장편 '나의 슈퍼 히어로 뽑기맨'을 써냈고, 제7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차지했다. 딸의 시점으로 뽑기에 몰두하는 아빠를 그리면서 가족애를 재확인하는 내용. 자전소설인 만큼 주인공은 작가 본명이고, 배경도 대구 수성구 그의 단골 뽑기방 '토이앤조이'다. 최근 인형 뽑기 열풍에 무임승차한 작품이라 오해하기 쉽지만, 이미 2년 전 집필한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1997년 데뷔해 '오늘의 작가상' 등을 수상했지만 2008년 이후 절필을 생각했다. "독자와 소통이 안 된다는 느낌이 컸어요. 굳이 억지로 써야 하나 싶었죠." 그러다 뽑기를 만났고, 다시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뽑기 기계 앞에 선 순간, 통증은 사라졌다. 각종 인형과 생활용품을 뽑아 집 안에 진열하며 전율했다. 동호회에 가입해 명절에도 대구·경북 지역 '원정'을 다녔고, 뽑기 장면을 촬영해 인터넷 방송까지 했다. "2년간 기계에 밥 준 게 1000만원 정도 되네요." 그러니 문학상 상금 전액(2000만원)이 아내 통장으로 입금된 건 자연의 이치라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뽑기는 설계이고 과학이다. 호흡법과 스트레칭 방법까지 따로 있다. '푸시' '크레인' 'UFO' 등 종류 불문 뽑기 기계의 천태만상이 담겨 있다. "어깨로 기계를 밀어치는 '숄더 어택', 옆 물건을 쓰러뜨려 목표물을 얻는 '가위치기' 등 기술도 넣었죠." 바둑 두듯 복기(復棋)까지 했다. "나중엔 집게나 봉의 각도, 제조사별 기계 특성까지 꿰게 된다니깐요." 그는 이미 뽑기계의 무림 고수. "고수들은 자연스레 뽑기방 사장님과 적수가 된다"며 "기계에 '난이도 조작'이 들어가면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직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아이들에겐 '뽑기를 자제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매일 겪는다"고 했다. 그러니 소설 말미에 등장하는 독백은 의미심장하다. '이 세상엔 정말 완전한 어른은 없어….' 그는 "뽑기 하면서 만난 사람 대부분이 직장이 없거나 사연이 기구했다"면서 "다들 자기만의 방식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고 말했다. 차기작도 구상 중이다. 남극점을 향해 달려갔던 영국인 탐험가 로버트 스콧의 얘기다. "탐험 내내 축음기와 레코드판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아문센보다 뒤처지긴 했지만요. 삶에 급급하지 않고 그 과정을 음미한 이들을 기억하고 싶어요." 데뷔 20년, 그는 다시 뽑아내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