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하며 굶지 않는 법 궁금하세요?"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 제목은 '한국에서 예술가로 살아남기'였다. 화면 속 귀 뚫고 빵모자를 삐딱하게 쓴 청년이 마이크를 들었다. 옆에 앉은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에게 당돌하게 묻는다. "작품으로 돈 버는 노하우가 있나?" 작가는 답한다. "나를 좀 버려야 해요. 감독(작품 의뢰인)이 멜로 하자는데 '전 사극만 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누가 쓰겠느냐고."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미술 강사인 이모르(31)씨는 작년 8월부터 예술가를 만나며 생존법을 묻고 있다. 그라피티(담벼락 그림) 작가, 타투이스트, 만화가 등 젊은 예술가의 분투기를 5분 분량으로 편집해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에 올린다. 지금까지 14편을 제작했다.

"10년 넘게 '하도급 인생'으로 살고 있다"는 이모르씨는 18세 고교 시절부터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게임 업체 의뢰를 받아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그림을 납품한 게 첫 계약이었다. 본명은 이한승. 평범한 이름으로는 노출 효과가 떨어졌다. "가명을 생각하는데 쉽게 안 떠올라요. '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모르'로 정했습니다."

그림을 좋아해 온라인에 작품을 올리면서 업체 눈에 띄었다. "첫 계약 땐 내가 가진 장기로 먹고살 수 있겠구나 싶어 기뻤죠." 그 철학으로 대학은 안 갔다. 의뢰가 들어오면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많고 수요가 적은 거죠. 일감이 정기적이지 않아요." 인형 탈 쓰며 호객하고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참여한 프로젝트가 엎어질 때 가장 서러워요. 일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니까요."

비슷한 처지의 젊은 작가들과 맥주잔 기울이며 신세를 푸념하다 "우리같이 위성처럼 떠돌면서 열심히 작품 파는 사람들을 위해 요긴한 정보를 담은 영상을 만들어보자"고 다짐했다. 캠코더와 마이크, 조명을 빌려 작가들을 섭외했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작가이기 이전에 하도급업자로서 팁(tip)을 공유한다.

"수염이 있으면 아티스트 느낌이 나서 500원이라도 더 받는다"는 자조 말고도 계약서 작성 요령, 저작권 협의, 사업자 등록증과 세금 계산서 발행 방법 등 실질적인 조언이 유머로 버무려진다. "한국에선 1인 기업이 현실적이에요. 마케팅과 회계, 일정 관리 등을 혼자 해야 합니다." 이씨가 올린 영상은 작가 지망생부터 일반인까지'예술인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반응을 끌어내며 약 84만번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는 2011년부터 서울 마포구 지하 1층에 월세 88만원을 주고 82㎡(25평)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자신과 동료의 작품 전시, 일반인을 위한 그림 수업이 열리는 문화 공간이다. "올해 재계약을 해 이 공간을 유지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예술가로 살아남는 최고의 방법은 뭘까. "일단 로또가 돼야 해요. 아니면 실세를 만나거나(웃음)." 이씨는 동영상에도 출연한 선배 잠산씨의 말을 빌리고 싶다고 했다. 15년 넘게 한국을 대표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버틴' 그의 고언(苦言)은 이랬다. "(살아남기) 쉽지 않아요. 모든 게 다 불투명하니까. 하지만 노력이 확률을 높인다는 건 변치 않는 진리예요. 새로운 시도나 도전을 안 하면 기회는 오지 않죠. 낚시처럼 떡밥을 계속 던져야 해요.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먼저 보여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