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업을 하다 보면 기름을 많이 먹거나 좌석을 다 채우지 못한 항공기는 정말 보기 싫어요. 하지만 이번에 들여온 ‘보잉787’은 기름도 적게 들고 좌석 규모가 적당해 참 마음에 듭니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27일 인천 운서동 정비 격납고에서 열린 보잉 B787-9 공개 행사에 이 기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조 사장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장남으로 지난달 사장에 취임했다. 이날은 취임 후 첫 공개 기자간담회 자리였다.
대한항공이 지난 22일 미국 보잉사에서 넘겨받은 B787은 규모는 중형급(좌석 수 250~300석)이지만 기재(機材)는 첨단이다. 한 번 뜨면 1만4000㎞까지 날 수 있어 대한항공 최장 노선(인천~애틀랜타·1만1481㎞)을 소화할 수 있다. 우선 3월 국내선(김포~제주)으로 운항 경험을 쌓게 한 다음 6월부터 국제선(토론토·마드리드·LA 등) 장거리에 투입할 계획이다. 2019년까지 10대가 들어온다. 기존 뉴욕·파리 등 핵심 장거리 노선은 이미 도입한 초대형기 에어버스 380(이하 A380·좌석 수 408석) 10대를 주력 기종으로 채택하고 나머지 장거리 노선엔 첨단 중형기를 투입하는 ‘투 트랙’ 전략이다.
◇좌석은 A380급… 기압 낮추고 습도 높여
이날 공개한 보잉787은 중형기지만 ‘하늘 위의 호텔’이라는 A380과 좌석 안락함에서 손색이 없다. A380처럼 이코노미석 앞·뒷좌석 등받이 간 거리가 34인치(약 86㎝)이고, 의자가 슬라이딩 방식이라 등받이를 뒤로 젖혀도 뒷좌석 승객의 무릎 앞 공간이 좀 더 여유롭다. 구형 항공기 비즈니스석은 의자가 170도 정도까지만 펴졌는데 이 기종은 180도까지 펴진다. 좌석마다 여닫을 수 있는 차단막과 개별 통로가 있어 옆 승객과 부딪칠 일이 없다. 모니터 크기(17인치·43㎝)만 빼면 퍼스트 클래스(23인치·58㎝)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
기내 기압도 크게 낮아져 여행 피로감이 덜한 게 특징이다. 보잉 기존 중형기(B777-200) 기내 기압이 백두산 정상 수준(해발 2400m)으로 느껴졌다면, 이 기종은 지리산 수준(해발 1800m)이다. 대한항공은 “귀에서 느끼는 압력이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습도도 15~16%로 기존 항공기(11%)와 비교해 개선됐다. 마원 대한항공 전무는 “기체의 50%에 쓰인 ‘탄소 복합 소재’가 비결”이라고 말했다. 기존 항공기는 알루미늄 합금 조각을 여러 개 조립해 동체를 만들었다면, 탄소 복합 소재는 동체를 거의 통째로 뽑아낸다. 이 때문에 연결 부위가 많은 알루미늄 합금보다 압력을 더 잘 견뎌내 기압을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탄소 복합 소재는 습도에 강해 잘 부식되지 않아 내부 가습 장치로 습도를 더 높여도 무방하다.
창문은 A380 대비 25% 크고, 중형기인 A330과 비교하면 78% 더 커 탁 트인 느낌을 준다. 창문 덮개는 없다. 특수 젤을 창문 속에 삽입, 창문 아래 버튼 조작으로 창문 투명도를 5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기내 조명을 LED(발광 다이오드)로 구성, 일출·일몰·순항·식사·취침·기상 등 상황에 따라 14가지 분위기를 연출한다.
◇연료 효율 20% 더 좋아
B787은 기존 중형기(B777-200) 대비 연료효율이 20% 높다. 이 역시 경량화 소재인 탄소 복합 소재를 사용한 덕분이다. 대한항공도 기여했다. 조원태 사장은 “대한항공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항공 운항과 부품 제작을 함께한다”면서 “B787에는 핵심 부품 6가지(항공기 동체 뼈대·항공기 꼬리 구조물 등)를 납품했다”며 “제작한 날개 끝 휘어진 구조물(레이키드 윙팁)은 공기 저항력을 감소시켜 연비를 5%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B787는 엔진을 둘러싼 덮개에 신기술을 적용, 엔진 소음이 기존 중형기(B767)보다 60% 적다. 터뷸런스(난기류) 같은 기상 상황을 감지하고, 동체 흔들림을 줄이는 운항 제어 시스템도 적용됐다.
◇"글로벌 명품 항공사 만들 것"
조 사장은 이날 “경영자로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직원의 행복과 주주의 가치 창출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잇따른 기내 난동 사건에 대해선 “그동안 승무원 판단보다는 고객들 반응에 신경을 더 써 직원들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며 “앞으로는 승무원 판단에 맡기고 그 결과 어떤 법적 문제가 생기더라도 회사가 책임지는 쪽으로 지침을 바꿨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노선 확장을 위해 미국 최대 항공사 델타항공과 합작사(조인트벤처)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