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피플] "태양신 할아버지, 아직 여쭤볼 게 많은데…"

"뭐들 이렇게 난리인지, 이틀 동안 마치 불난 것처럼 쉴 새 없이 전화벨이 울렸어요."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자택에서 만난 조광현(82·사진)씨는 이렇게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전직 치과 의사인 그는 누리꾼(네티즌) 사이에서 '태양신(네이버 지식인 활동가 상위 등급) 할아버지'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지난 24일 블로그를 통해 "그동안 감사했다"며 은퇴 선언을 하자, 누리꾼 팬들이 "태양신 할아버지, 아직 여쭤볼 게 많은데 부디 돌아와 주세요" "그동안 감사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다.

조씨는 지난 1998년 당뇨가 심해져 30년 넘게 운영했던 치과 의원 문을 닫았다. 그때 사위가 "장인어른 성격상 일을 안 하곤 심심해 못 견디실 것"이라며 컴퓨터를 사줬다. '지식인 할아버지'로서 조씨의 새 삶이 시작된 계기였다.

늦은 나이에 컴퓨터와 인터넷을 익힌 조씨는 지난 2002년부터 네이버 지식인 코너에서 네티즌 질문에 답변을 달아주는 활동을 해왔다. 치의학 관련 질문뿐 아니라 일반 생활 상식까지 무려 3만건이 넘는 질문에 답을 해줬다. 이런 그를 일부 네티즌은 '국민 궁금증 해결사'로 불렀다.

그의 답변은 재치 있는 촌철살인(寸鐵殺人)으로 인기를 끌었다. "잇몸이 아플 땐 어떤 성분을 먹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먹지 말고 치과에 가세요"라는 식이다. 지난 2012년에는 "산타 할아버지 나이는 몇 살인가요?"라는 한 어린이 질문에 "아빠 나이와 동갑입니다"라는 답변을 달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산타는 다름 아닌 부모님이란 뜻이다. 이 답변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제 산타 나이'라는 키워드로 인터넷에서 회자되고 있다. 조씨는 "사실 타자가 익숙하지 않아 '독수리 타법'으로 치느라 답변이 짧았던 것인데 이렇게 인기를 끌 줄 몰랐다"고 말했다.

조씨가 은퇴한 것은 건강 때문이다. 여러번 대장암·신장암 수술로 몸이 약해진 데다 재작년 망막 수술을 받은 뒤로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지름 10㎝짜리 대형 돋보기를 모니터에 비춰가며 질문에 간신히 답변해왔다"며 "몇 년 전만 해도 하루 100건씩 질문에 답했는데 이제는 하루 10건도 버거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여생(餘生)을 알츠하이머병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내를 돌보는 데 쓰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