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2030, 코인 빨래방서 스트레스 세탁

지난 26일 서울 구로역 인근 한 코인(Coin·동전) 세탁소.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 10대가 좌우로 늘어선 이곳에 들어서자 커피 향기가 풍겼다.

빨랫감이 담긴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온 손님 10여 명이 한쪽에 비치된 커피 머신에서 원두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었다. 20대 남녀 커플은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세탁기 옆에 있는 대형 게임기에 앉아 게임을 즐겼다. 아늑한 소파에 앉아 책을 읽거나 휴대전화로 드라마를 보는 손님도 있었다.

혼자 사는 직장인이나 대학생들이 밀린 빨래를 해결하는 빨래방이 젊은이들의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인테리어를 카페와 오락실처럼 꾸며 손님들이 독서와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카페형 코인 세탁소'는 서울 대학가와 오피스타운 주변에 속속 생겨나 현재 40여 곳에 달한다.

세련되게 변신한 코인 세탁소를 찾는 손님들의 옷차림도 달라졌다. 과거엔 휴일 오후 머리에 까치집이 진 채로 슬리퍼를 신고 오는 손님이 많았는데, 지금은 깔끔한 옷을 차려입고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늘었다고 한다.

서울 용산구 해방촌의 한 코인 세탁소는 손님들에게 음료와 맥주를 판다. 주말마다 이곳을 찾는다는 회사원 박수경(여·28)씨는 "기다리는 동안 음악을 들으며 한 주를 정리하고, 차근차근 다음 주 계획도 짠다"며 "세탁소에서 한 시간 휴식을 통해 한 주 동안 쌓인 몸과 마음의 피로를 푼다"고 했다. 이 업체 이현덕 대표는 "평일엔 30명, 주말엔 60~70명이 찾는다"며 "굳이 빨래를 하지 않더라도 차를 마시며 쉬러 오는 손님도 많다"고 말했다.

공부하기 바쁜 고시생, 취업 준비생들은 코인 세탁소를 공부하는 독서실처럼 활용한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의 한 코인 세탁소에서 고시생 권은별(여·26)씨가 이불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공무원 수험서를 꺼내 들었다. 권씨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 묘하게 집중이 잘된다"며 "빨래가 끝나고도 두세 시간 더 공부를 하고 간다"고 했다.

취준생 최용석(26)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세탁을 하며 입사 시험 준비용 시사 토론을 하는 '세탁소 스터디'를 하고 있다. 최씨는 "밥 먹으며 함께 공부하는 '밥터디'처럼 세탁소 스터디는 시간을 아낄 수 있어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 여성은 안전하다는 이유로 코인 세탁소를 찾는다. 직장인 김모(여·32)씨는 작년 여름 퇴근 후 무인(無人) 세탁소에 갔다가 취객에게 험한 욕설을 들었다. 그때 이후로 김씨는 직원이 상주하는 카페형 세탁소만 찾는다.

2년 전 학교 앞 빨래방에서 속옷을 도둑맞은 대학생 박모(여·24)씨도 같은 경우다. 박씨는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세탁기 작동을 멈추고 속옷만 훔쳐 갔는데, 변태에게 봉변을 당할까 두려워 무인 세탁소는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24시간 운영하는 곳도 있다. 이런 곳은 밤마다 젊은이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는 수다의 장으로 변한다.

고시생 조수현(30)씨는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과 토요일 저녁 이곳을 찾아 세탁하고 맥주를 마시는 게 작은 즐거움"이라며 "공부 때문에 따로 쉴 시간을 빼기 어려운 고시생에겐 코인 세탁소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한다"고 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업무나 공부에 지친 사람들이 빨래라는 집안일을 처리하면서 오락과 휴식까지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카페형 세탁소가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