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과잉 시대… 黑白에 물든 콘텐츠

문화의 역설일까? 색(色)이 넘쳐나는 컬러 과잉의 시대에 흑백(黑白) 콘텐츠들이 게릴라처럼 등장하고 있다. 모노톤으로 시각적 차별성을 얻고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다.

흑백 작업이 가장 활발한 분야는 웹툰(인터넷 만화)이다. '마음의 소리'로 유명한 인기 웹툰작가 조석은 작년 6월부터 신작 '문유'를 연재하고 있다. 지구 멸망 후 달에 혼자 남은 인간의 이야기를 차분한 단색조로 그려나간다. 이 외에도 '송곳' '헬퍼2: 킬베로스' '마스크걸' '블랙 수트'(네이버), '혼자를 기르는 법' '레드 스톰'(다음), '마당 씨의 식탁' '김철수씨 이야기'(레진코믹스) 등 주요 웹툰 사이트마다 흑백 작품들을 서비스하고 있다.

이는 웹툰이 '읽는' 만화가 아닌 '보는' 만화로 발전해온 데 대한 반작용이다.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한창완 교수는 "웹툰은 독자들이 화면을 워낙 빨리 넘기기 때문에 자극적인 색과 액션으로 눈길을 끌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흑백 웹툰은 시각적으로 낯설어서 보는 속도가 느려지고 스토리 전달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2015)는 작년 말 흑백판으로 재개봉했다. 조지 밀러 감독은 '매드 맥스2'(1981) 제작 당시부터 흑백판을 구상했다가 이번에 실행에 옮겼다. 그는 "색이 주는 일부 정보가 제한되지만 흑백톤이 영상을 더 상징적(iconic)으로 만들어준다"며 흑백판이 "최고의 버전"이라고 했다. 불을 뿜는 기타를 연주하던 '빨간 내복' 캐릭터의 강렬함이 반감돼 아쉽다는 반응도 있지만, 똑같은 내용을 흑백으로 바꾼 이 영화를 국내에서만 1만2000여명이 봤다.

패션에서는 품위 있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흑백을 사용한다. 남성 패션지 GQ는 올해 2월호를 2012·2014년에 이은 세 번째 '블랙 에디션'으로 내놨다. 일부 광고 등만 제외하고 잡지 한 권을 통째로 흑백으로 만들었다. 선명한 흑백으로 표현된 이미지들이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추고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충걸 편집장은 잡지를 내면서 "흑과 백 사이에 얼마나 색이 많은지, 또 얼마나 풍부한지 놀랐다"고 했다.

스니커즈 브랜드 컨버스는 지난달 '턱시도 팩'이라는 이름의 특별판을 출시하며 흑백을 활용했다. '턱시도와 드레스에 어울리는 스니커즈'라는 콘셉트에 맞춰 신발을 검정·흰색·회색으로 디자인하고 홍보용 사진 역시 흑백으로 촬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