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대학 신입생은 발가벗겨도 되나요

서울의 한 명문 사립대 신입생 김민지(가명·여)씨는 지난 1월 학부 커뮤니티에 올라온 공지 글을 읽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신입생들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커뮤니티에 올리라'는 글이었다. 그런데 자기소개서 양식에 이해하기 어려운 항목이 여럿 있었다. 사진은 물론 주량(酒量)과 연애 여부, 통금(通禁) 시간 등 개인 정보까지 요구한 것이다. 김씨는 "선배들이 정보기관도 아닌데 신입생들의 연애 여부 같은 민감한 내용까지 물어봐서 정말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신입생들이 항의하자 일부 재학생도 "선배의 도를 넘은 갑(甲)질"이라며 비판에 동참했다. 한 재학생은 학교 익명 게시판에 '신입생 사진으로 얼굴 평가를 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젠 신입생들의 프라이버시는 안중에도 없는 거냐'는 글을 올렸다. 결국 이 학부 학생회장이 "신입생과 재학생 사이에 네트워크를 미리 형성하는 데 좋다고 판단해서 한 것"이라며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던 양식이었으며 불순한 의도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 공식 사과했다.

신입생 입학 시즌을 맞아 각 대학 본부와 총학생회는 선배들의 강압적인 '군기 잡기' 악습을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일부 대학에서 이런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사생활 정보가 담긴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선배들은 "선후배 간 친목 도모를 위해 전통적으로 한 전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입생들은 "선배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사생활 침해"라고 반발하고 있다. 서울대 신입생 정모(여)씨는 "기업이 채용할 때도 직무와 무관한 질문을 하지 않는데 아직 대학가에 이런 문화가 남아 있어 깜짝 놀랐다"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얼굴 보고 인사하면 되는데, 미리 사진을 올리라는 것은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부산에 있는 한 대학은 신입생의 자기소개서에 '자신 있는 신체 부위'를 쓰도록 했다. 이 대학 신입생 주모씨는 "'마지막 키스는' '제일 마음에 드는 이성 선배는'처럼 망측한 항목을 채우느라 진땀을 뺐다"고 했다. 수도권 한 사립대는 자기소개서에 현재 사는 주소뿐 아니라 주량을 잔 단위로 기입하라고 했다. 이 대학 신입생 최모씨는 "주소 같은 개인 정보를 빈칸으로 올렸더니 학과 선배가 전화를 해서 '빠짐없이 성실하게 기입해달라'고 요구하기에 어쩔 수 없이 다 적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각 대학 총학생회는 "자기소개서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위한 참고 자료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한 명문 사립대 학생회 관계자는 "주량을 묻는 이유는 술이 약한 신입생들에게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물어보는 것"이라며 "이상형 등 연애사를 물어보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재미 삼아 그런 질문을 하는 경우가 대학가에서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과도한 음주'로 신입생들이 고통받는 현상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일부 대학이 신입생들에게 막걸리를 뿌려 물의를 빚는 등 대학가의 비뚤어진 음주 문화가 비판을 받았다. 많은 대학이 음주 문화를 개선하겠다고 자정(自淨) 선언을 했지만 아직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곳이 많다. 경북 구미의 금오공대는 지난달 1700여명이 참여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1인당 4~5병에 해당하는 소주 7800병을 준비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교나 전공에 대한 소속감을 높인다는 명분을 걸고 신입생들의 개성이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대학가의 잘못된 관행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