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거나 나쁘거나] "믿고 보는 조진웅" "더 뾰족하게 찔러줬다면…"

공포와 스릴러 매력 적절히 배합… 조진웅·김대명의 好演 돋보여

"팔다리는 한남대교, 몸통은 동호대교에 따로 버려야 내년 4월까지 떠오르지 않지."

신도시의 내과 병원에서 수면 내시경 검사를 하는 의사 '승훈'(조진웅)은 마취 중인 환자의 중얼거림에서 우연히 연쇄 살인 사건의 단서를 듣는다. 1980년대 연쇄 살인 사건으로 유명했던 이 도시에서는 최근 부녀자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찾았다고 확신한 승훈은 조용히 범인 추적에 나선다.

1일 개봉한 '해빙'(각본·감독 이수연)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 실제 연쇄 살인 사건에서 착안한 영화다. 전작인 '4인용 식탁'에 이어서 이수연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공포물과 스릴러의 장르적 특성을 능수능란하게 뒤섞는 솜씨를 보여준다. 미지의 존재가 엄습하는 듯한 오싹함이 공포물의 매력이라면, 다음 장면이 못 견딜 만큼 궁금해서 초조함에 빠지는 것이야말로 스릴러의 묘미다. 장르적 재미의 적절한 배합에서 비롯하는 긴장감은 중반까지 관객을 이끌고 가는 동력(動力)이 된다.

물론 영화는 기존 장르 영화의 어법(語法)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정육점이 살인의 배경이 되는 '델리카트슨 사람들'에서 출발해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로 끝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약점을 덮고도 남는 것이 배우들의 호연(好演)이다. 조진웅은 일상에 지친 무기력한 중년부터 사소한 단서도 놓치지 않으려는 추리소설 애호가까지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정육점 주인 역의 김대명은 드라마 '미생'에서 보여준 따스한 코믹 연기 외에도 연기 폭이 넓은 배우라는 걸 입증한다.

후반부 들어 지나친 설명조… 전반부의 긴장감 떨어뜨려

6회까지 퍼펙트로 막던 선발 투수가 7회 들어 갑자기 무너지며 대량 실점할 때, 야구 해설자는 말한다. "아, 이상해요. 구위도 그대로고 볼 끝도 살아 있는데…. 타순이 돌다 보니 구질에 익숙해진 걸까요?"

잘 쓴 추리소설은 결말이 가까울수록 책장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다. 궁금하니까 독자 스스로 그렇게 한다. 스릴러 영화는 비슷한 듯 다르다. 관객이 체감하는 극의 진행 속도가 뒤로 갈수록 빨라져야 하는데, 그 속도를 만드는 건 온전히 연출자 몫이다. 웰메이드 스릴러 '해빙'은 그래서 아쉽다. 후반부 들어 배우가 직접 구술하는 설명조로 흐르며 급속히 이야기가 헐거워지기 때문이다. 추리 스릴러 장르물에는 치명적 약점이다.

전반부는 놀랍다. 인과의 흐름을 풀쩍 풀쩍 뛰어넘어 관객이 자유롭게 해석 가능한 '빈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영리하고 매력적인 '점프 컷'의 묘미다. 식당 테이블에 술 취해 엎드린 남자를 서서히 적셔 들어오는 냉동창고의 불빛, 점심시간 텅 빈 병원에 울리는 전화벨의 잔향 같은 마감도 세밀하다.

주인공 의사 남자는 독백으로 내뱉는다. "난 정교한 함정에 빠졌어. 너무 정교한 함정." 이 영화 역시 앞뒤 아귀를 맞춰야 한다는 강박으로 스스로를 옭아맨다. 말로 설명하지 않으면 모를 거라고, 관객을 지레 과소평가한 걸지도 모른다.

개봉 첫날인 1일 하루 관객이 39만명.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한 다음 날, 외화 '로건'에 밀려 2위가 됐다. 영화 속 '정육점 노인'(신구)은 말한다. "얇고 뾰족한 칼로 뼈마디 사이를 찔러줘야 돼. 그래야 관절이 깨끗하게 '툭' 떨어지지." 이 영화는 더 뾰족하게, 압축하고 덜어내며 속도를 끌어올렸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