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평(三視世評)] 맛은 밋밋해도… 들고 다닐 땐 폼 나네

잠도 모자라고 돈도 부족한 요즘 직장인에게 편의점 커피는 고마운 존재다. 씀씀이 줄이는 긴 불황 속에 단돈 1000원짜리 원두커피는 '가격 대비 효용'을 따지는 소비 트렌드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일반 커피 전문점의 20~50%밖에 안 되는 가격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혹시 쓰기만 하거나 밍밍한 맛은 아닌지. 가수 장기하 노래처럼 '싸구려 커피' 마시다 '적잖이 속이 쓰려 오는' 건 아닌지.

인기는 드높다. CU·GS25·세븐일레븐 등 편의점 3사에서 한 달에 팔리는 원두커피는 거의 1000만잔. 김성윤 음식전문기자와 하루 너댓 잔씩 종류 불문 커피를 달고 사는 최수현 기자, 유명 전문점 믹스커피를 애용해 용돈을 아끼는 채민기 기자가 서울 광화문 일대 편의점을 돌며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셔봤다. 바리스타는 아니지만 피곤에 절어 사는 직장인 입장에서 저렴한 편의점 원두커피가 어느 정도 만족과 위안을 주는지 체험했다.

◇텀블러에 담으면 900원

2015년 초 세븐일레븐이 '세븐카페'를 출시하면서 편의점 커피 시대가 열렸다. GS25가 '카페25', CU가 '카페겟(GET)'을 내놨다. 편의점 커피는 모든 과정이 '셀프'다. 기계를 찾아 스스로 컵에 커피를 담고 뚜껑을 덮어 거리로 나서야 한다.

커피 값은 세븐일레븐·GS25가 1000원, CU는 1200원이다. 세븐일레븐은 필터를 이용해 내리는 드립 방식, GS25·CU는 고압 스팀으로 추출하는 에스프레소 방식이다. 세븐일레븐은 큰 컵 500원 추가. GS25는 큰 컵 200원 추가에 텀블러를 가져올 경우 100원 할인해준다. '900원 커피'가 가능한 셈이다. CU는 다른 곳보다 20% 비싸지만 양이 많다. 300원 더 주고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할 수 있다.

◇GS25의 맛, CU의 크레마, 세븐일레븐의 향

맛은 3사 모두 밋밋했다. 개성도 도드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 잔에 2000~3000원 하는 중저가 커피 전문점에 비해 떨어지는 맛은 아니었다. 편의점 커피는 매장 임차료, 인테리어 비용, 직원 인건비가 따로 들지 않아 전문점 수준의 원두를 써도 낮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어서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는 GS25 커피 맛이 "가장 두께 있고 입체적"이라고 평했다. "너무 쓰거나 시거나 떫은 부정적인 맛이 없었다. 식었을 때는 쓴맛과 함께 시큼한 맛이 살짝 돌았다." 세븐일레븐 커피는 "풍미가 떨어지고 커피의 특징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CU는 크레마(에스프레소 위에 뜨는 갈색 크림)가 풍부하고 향도 진했지만 식었을 때 맛이 심심해졌다.

최수현 기자는 "CU 맛이 가장 부드러워 많은 양을 마셔도 부담이 적다"고 했다. 채민기 기자는 "GS25 맛이 구수하고 쌉싸래하지만 감동할 정도는 아니다"며 "세븐일레븐은 맛보다 향이 좋았다"고 평했다.

◇외모도 경쟁력…단열재 씌운 커피도

테이크아웃이 기본인 편의점 커피를 선택할 때 '폼'은 의외로 중요한 요소다. 아무리 싸고 맛있다 해도 손에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초라해 보인다면 선뜻 구입하기 망설여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CU는 영리한 전략을 썼다. 컵이 가장 크고, 종이 홀더 대신 폭신한 단열재를 씌워 손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다. 커피 위에 크레마가 풍부하게 덮인다. 최수현 기자는 "고급 커피를 마시는 듯한 착각이 든다"고 했다.

1000원짜리 세븐일레븐 커피는 같은 값인 GS25와 양은 비슷하지만 컵이 작다. 일반 종이컵보다 약간 더 큰 사이즈. 채민기 기자는 "어딘지 모르게 옹색한 느낌"이라고 했다. 단돈 1000원짜리 커피도 폼에 죽고 폼에 사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