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비용 항공사에 맞서… 대형 항공사들 '합작'

"대한항공은 미국 델타항공과 '조인트 벤처' 협상 중입니다."

지난달 말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기자 간담회에서 밝힌 내용이다. 요즘 국내 항공업계에서는 '조인트 벤처(joint venture·합작)'가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항공업계에서 조인트 벤처는 합작 회사가 아니라 합작 수준의 동맹 제휴를 말한다. 기존의 '코드셰어(좌석 일부 공유)'가 항공기 내 좌석 일부를 제휴사와 공유한다면, '항공 동맹(얼라이언스)'은 여기에 마일리지·라운지 공유 등을 추가한 연합체다. 조인트 벤처는 한발 더 나아가 모든 좌석을 공동 판매하고 운영 수익도 나누는 '혈맹' 수준이다. 함께 엮인 항공사가 많을수록 승객들은 훨씬 많은 노선과 일정을 더 저렴하게 제공받을 수도 있다.

항공업계에 조인트 벤처가 뜬 것은 저비용항공사(LCC)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미국·유럽 대형 항공사들이 LCC가 따라오기 힘든 장거리·환승 노선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내놓은 전략이 글로벌 항공업계의 트렌드가 됐다. 최근엔 일본·중국 항공사들도 미국·유럽 항공사들과 조인트 벤처에 나서고 있다. 국내 항공사 중에는 대한항공이 추진하고 있으며, 아시아나 항공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장거리 티켓 판매, '수퍼마켓'에서 '대형마트'로 간다

한국 국적기가 미국 항공사와 조인트 벤처를 맺으면 어떤 혜택이 발생할까. 당장 한국과 미국 승객들은 아시아와 미주를 잇는 항공권을 더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노선과 일정에서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국내 항공사는 미국 항공사가 보유한 북·남미 중심으로 촘촘하게 짜인 노선을, 미국 항공사는 국내 항공사가 보유한 아시아 중심의 촘촘한 노선을 공동 관리하면서, 중복 노선·일정은 줄이고 더 다양한 노선을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장거리 항공권 구매가 수퍼마켓 규모에서 이뤄졌다면, 조인트 벤처가 맺어지면 '대형마트'에서처럼 다양한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2011년 일본항공(JAL)과 아메리칸항공이 조인트 벤처를 맺은 뒤, 일본에서 미국 본토로 가는 직항 노선이 5개 도시에서 9개 도시로 늘었다. 조인트 벤처를 맺은 항공사들은, 맺기 이전보다 매출과 수익이 5~10% 증가했다. 승객들은 합작사들의 마일리지·라운지·수속 창구 등을 똑같이 이용할 수 있고, 사전 좌석 지정이나 자동 발권 등 부가 서비스도 똑같이 이용 가능하다. 기존 '코드셰어'는 마일리지·라운지 공유가 제한적이고, 사전 좌석 지정이나 자동 발권기 이용이 불가능했다.

◇정부의 '독점 규제' 넘는 게 관건, 해외는 '규제 면제'로 소비자 편익 보호

조인트 벤처의 최대 관건은 '독점 규제 논란'이다. 조인트 벤처가 확산되면 특정 항공사가 기존의 허가된 노선보다 휠씬 많은 노선을 정부를 거치지 않고 대거 확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초기에 이와 같은 논란이 있었다. 일부 항공사들이 특정 노선 운항을 독점하면서 항공권 가격을 담합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인트 벤처로 오히려 항공권 가격이 낮아지고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을 근거로 미국 정부는 '독점 규제 면제'를 결정했다. 일본 등 다른 나라들도 미국과 비슷한 독점 규제 면제를 해 주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단 대한항공이 추진 중인 델타와 조인트 벤처가 미주 노선 운항 점유율을 지나치게 확대할 우려가 있는지 파악하겠다는 입장이다. 윤문길 한국 항공대 교수는 "조인트 벤처는 항공 동맹이나 코드셰어처럼 따라가지 않는 항공사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는 글로벌 추세여서 정부도 국내 시장만 놓고 보면서 독점 규제에 매달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면서 "다만, 시장 현황과 계약 조건을 꼼꼼히 따지지 않고 섣불리 추진하다가는 조인트 벤처로 경쟁사에 이익을 빼앗길 수도 있으니 면밀한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