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리 올리면, 서민 울고 은행은 웃는다

서울 강북에 사는 직장인 정모(45)씨는 4년 전에 집을 담보로 변동금리 대출을 받았다. 작년까진 연 2.94%이던 금리가 지난달부터 3.06%로 뛰었다. 정씨가 쓰고 있는 마이너스통장 대출 금리도 작년 10월 연 3.14%였던 게 이젠 3.29%로 올랐다. 반면 정씨가 거래하는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그동안 큰 변화가 없었다. 정씨는 "대출금리는 뛰는데 예금금리는 제자리걸음"이라며 "은행들이 '예대 마진(대출이자와 예금이자의 차이)'으로 수익을 늘리는 동안 고객들만 '봉'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고객은 '봉'"… 대출금리 뛰는데, 예금금리 제자리걸음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월 시중은행의 대출금리(평균 연 3.51%)와 예금금리(1.51%)의 차이(2%포인트)는 4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계대출 금리는 작년 8월(평균 연 2.95%)부터 올 1월(3.39%)까지 매월 상승했다. 반면 정기예금 금리는 작년 8월(평균 연 1.31%)부터 12월(1.54%)까지 올랐다가 올 1월(1.47%) 떨어졌다. 은행들의 예대 마진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조만간 미국의 금리 인상이 확실해지면서 국내 가계대출 금리는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신한·국민·하나·우리 등 주요 시중은행의 주택 담보대출 금리는 지난 1월부터 이달까지 최대 0.47%포인트 뛰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 상승기에 은행들이 대출금리는 빠르게 높이고 예금금리는 느리게 올리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고무줄' 가산 금리, 빠르게 올라

은행들은 자금 조달 금리에 은행의 목표 이익률, 고객의 신용등급 등을 반영한 '가산 금리'를 덧붙여 대출금리를 정한다. 금융 당국이 가계대출을 억제하면, 은행들이 가산 금리를 빠르게 높이는 방법으로 대출금리 인상에 가속도를 붙일 우려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경우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주택 담보대출 자금 조달 금리가 0.16%포인트 오를 동안 가산 금리는 0.24%포인트 뛰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2일 '금융시장 점검 회의'를 열고 "금융권이 밀어내기식으로 가계대출을 늘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이 가계대출 규모를 키우지 못하는 상황이 예상된다.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은행들이 '예대 마진 확대'라는 손쉬운 선택을 할 가능성도 커지는 것이다.

문제는 대출금리를 높이는 가산 금리가 은행에 따라 '고무줄'처럼 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은행에 따라 목표 이익률이 2~3배 차이가 나고 가산 금리 책정 근거와 절차가 명확하지 않아 고객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비은행권 취약 채무 급증… '풍선효과'

은행권의 가계대출이 막히면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 채무자는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 등 비(非)은행권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다. 앞으로 대출금리가 더 오르면 이들의 부담이 커지게 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비은행권의 음식·숙박업자 대출이 역대 최대 규모인 11조4127억원을 기록했다. 한 해 만에 2조8245억원 늘어난 것이다. 비은행권의 음식·숙박업자 대출이 10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년 비은행권의 음식·숙박업자 대출 증가액은 은행권의 관련 대출 증가액보다 1조원 이상 많았다. 음식·숙박업은 대표적인 영세 자영업으로 존속 기간이 3.1년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