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우주탐사 뛰어든 흑인, 그 따스한 실화

"우리는 10년 안에 달에 사람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 일은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 이듬해인 1962년 9월 휴스턴에서 했던 연설이다. 여기엔 '우주 탐사 경쟁'에서 소련에 뒤처질 수 없다는 다급함이 담겨 있었다. 소련은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에 성공했다. 1961년에는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인 유리 가가린(1934~1968)이 1시간 48분가량 지구 궤도를 순회했다. '소련의 인공위성이 미 대륙을 공격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퍼졌다.

23일 개봉하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우주 탐사 경쟁에 뛰어들었던 흑인 여성 수학자·과학자 3명의 실화(實話)에 바탕한 영화다. 우주 탐사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수학 공식을 찾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수학자 '캐서린 존슨'(99·타라지 헨슨), 미 항공우주국(NASA) 최초의 흑인 여성 간부가 된 '도로시 본'(1910~2008·옥타비아 스펜서), 나사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 '메리 잭슨'(1921~2005·자넬 모네)이 실존 모델들이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흑인 인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날 무렵의 1960년대 초반 상황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나사에 들어간 흑인 여성들에게도 어려움이 없을 리 없었다. 연구실 건물 안에 '유색 인종 전용 화장실'이 없어서 비를 맞으면서도 건물 밖까지 800m를 뛰어가고, 커피 포트조차 백인 남성 동료들과 함께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주 경쟁에서 밀린 미국의 위기는 흑인 엘리트 여성들에겐 기회였다. 흑인 여성 최초로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갔던 '수학 영재' 존슨은 우주 궤도 탐사에 필요한 공식 계산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결국 우주 비행사 존 글렌은 1962년 비행 직전 이렇게 말했다. "그 여자분(존슨)에게 숫자를 점검하게 해주세요. 그분이 숫자가 옳다고 하면 출발하겠습니다."

이처럼 수학이 짜릿하고 매력적으로 묘사된 영화도 '굿 윌 헌팅'과 '이미테이션 게임' 이후 오랜만인 것 같다. 영화 속 흑인은 마약상이나 인권 운동가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전문직 여성을 조명했다는 점이 새롭다. 이 영화는 지난해 12월 미국 개봉 이후 2억달러(200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갈등을 부추기기보다는 화합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도 '실화 영화'의 좋은 사례가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