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3.22 10:43

햇살이 너무도 좋아 둘레길로 나섰다. 지난겨울의 매서움과 날카로움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훈풍이 분다.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나는 이때의 바람이 좋다. 어렸을 때도 이 무렵이면 산으로 들로 쏘다녔다. 둘레길마다 개나리도 진달래도 눈을 떴다. 꽉 다물었던 입술이 조금씩 열려 있다. 곧 꽃이 피고 나비가 나르리라.

모퉁이를 돌아섰다. 대부분 비가 와야 흐르는 개울에 걸쳐진 나무다리를 걷는다. 눈길 닿는 곳에 늘 자작자작 물이 스며있는 곳에 사는 갈대가 바람에 흔들린다. 지난 겨울 사생결단(死生決斷)으로 달려든 거센 바람에 잔등이 다 뜯겨 나갔어도 아직은 의연하다. 갈대가 무성할 때 품어 준 새들이 다 떠나갔어도 아직은 보호하고 품어 주어야 하는 것들이 남아있나 보다. 사랑이다. 연약하기 이를 때 없는 갈대도 이럴 진데 요즘은 너 나 없이 사생결단(死生決斷)으로 달려드는 사람들로 넘쳐 난다. 품어서 같이 살자는 어디서고 찾아볼 수 없다.

사진=조선일보DB

나라는 구한말 시대같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데 ‘그런 건 나 몰라라’ 자신만 옳다고 우겨댄다. 이성도 없고 논리도 없다. 상대를 물어뜯는 가짜 뉴스는 넘쳐나고 오직 분노와 격렬한 저항만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소위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국정을 돌볼 생각은 하지 않고 탄핵과 반 탄핵을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부채질하기에 바쁘다. 이러다 나라가 그대로 절단 나는게 아니가 싶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은 좌불안석으로 잠 못 이룬다.

이런 와중에 중국, 일본, 북한도 사생결단(死生決斷)을 하고 있다. 모두 우리를 짓밟고 싶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이런 판국에 소위 지도자들은 ‘다 네 탓이다’ 하고 국민은 ‘내 의견이 옳다고 끝장을 보겠다’ 한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다. ‘사랑을 따르자니 스승이 울고, 스승을 따르자니 사랑이 운다’라는 옛 악극단 시절 연극이 생각난다. 미국을 따라 사드를 배치하자니 중국의 반발이 사생결단(死生決斷)으로 달려들고, 중국을 따르자니 한미관계를 무시하고는 살 수 없는 우리 신세가 불쌍하고 처량하다. 좋을 때만 이웃이라는 일본은 양의 탈을 집어 던지고 독도니 소녀상이니 하는 것들을 강공책 모드로 브레이크 없이 몰아붙인다. 이 혼란한 틈을 타 그동안 하고 싶어도 못 했던 일들을 하겠다고 사생결단(死生決斷)이다.

우리 같은 국민이 보기엔 분명 위기인데도 대통령은 식물인간이고 이하 정부 관료들은 무대책이 상책이라 여긴다. 국민은 두 패로 나뉘어 촛불과 태극기를 들고 내내 대성통곡하며 목이 터지라 운다. 국회는 개점휴업 상태로 경기 활성화를 하겠다고 각종 올려놓은 현안들을 못 본체하고 국민들 속에 숨어들어 부채질도 모자라 대형 선풍기를 틀어 댄다. 내 자리만 제대로 보전을 하고, 국민의 처절한 울음을 밟고 높은 자리로 오르겠다고 오늘도 동분서주한다.

계절은 어김없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데 우리들의 봄은 지금 어디쯤 머물고 있을까? 언제쯤이나 우리 삶에 봄바람 불고 꽃이 피려나? 그래도‘언젠가는 우리에게도 다시 봄이 오겠지’ 하는 생각의 끈을 오늘도 손에 꼭 잡고 걷는다. 희망은 늘 내 앞에 있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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