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체 드러나자 울먹인 엄마 "아들, 너 주려고 축구화 사왔다"

"제발."

세월호가 1073일 만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23일 오전 6시 40분쯤.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인양 현장에서 1.6㎞가량 떨어진 어업 지도선 '무궁화 2호'에 타고 있던 희생자 가족 7명은 마른침을 삼키며 동이 터오는 아침 바다 멀리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모두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이었다.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가 0도 가까이 떨어졌지만, 이들은 갑판을 떠날 줄 몰랐다. 수면 위로 2~3m쯤 올라온 선체 윤곽이 멀리서도 어렴풋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날 오전 10시부터 30시간 넘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배 위에서 인양 작업을 지켜봤다.

 

사고 발생 3년이 다 된 지금까지 찾지 못한 실종자는 경기 안산시 단원고 학생 남현철·박영인·조은화·허다윤, 단원고 교사 고창석·양승진씨, 그리고 일반인인 권재근·권혁규 부자(父子)와 이영숙씨 등 총 9명이다. 이 9명의 가족은 참사 이후 1000일 넘게 팽목항을 지켜왔다. 2014년 11월 11일 실종자 수색이 중단된 후에는 정부가 팽목항에 설치한 가건물 10동과 컨테이너 박스 4동으로 이뤄진 '세월호 가족 주택'에서 기거했다.

권혁규군의 큰아버지인 권오복씨는 하루도 팽목항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시신만 발견되면 (먼저 발견된) 제수씨와 함께 동생 가족 장례를 제대로 치르고 모든 걸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 여섯 살이던 혁규군은 아버지·어머니·여동생과 함께 온 가족이 제주도로 이사 가는 길에 참사를 당했다. 한 살 아래 여동생만 구조됐고, 어머니는 주검으로 발견됐다. 자영업을 하던 권씨는 동생과 조카를 기다리느라 가게 문을 닫은 지 오래다. 권씨가 말할 때 어금니 3개가 빠진 자리가 보였다.

단원고 2학년이던 허다윤양 아버지 허흥환씨도 매주 한 번씩 팽목항에 들렀다. 그도 개인 사업을 접고 딸을 기다리는 중이다. 허씨와 아내 박은미씨는 "딸을 찾기 전까진 미래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고 했다. 허씨는 세월호가 떠올랐다는 소식을 듣고도 "선체가 완전히 떠오를 때까진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조은화양의 어머니 이금희씨는 "이게 세월호 배래요. 제발 찾아주세요" 하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사고 전 '축구화를 사 달라'고 조르던 아들 박영인군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김선화씨는 팽목항에 아들이 갖고 싶어 하던 축구화를 놓아뒀다. 이들의 유일한 바람은 사랑하는 가족의 시신이 세월호 선내에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오후 10시 해양수산부가 "24일 오전까지 세월호 선미 램프(개폐식 선적용 다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인양이 중지될 수 있다"고 긴급 브리핑을 하자 가족들 표정이 굳어졌다. 권씨는 "이번에 인양 못 하면 또 보름 이상 기다려야 한다"며 "정부를 믿고 기다려보겠다"고 했다.

다른 세월호 유가족들도 속속 현장에 도착했다. 전날 새벽 안산에서 전세 버스 편으로 진도에 도착한 유가족 47명은 어업 지도선 '무궁화 23호'를 타고 인양 현장에서 1.6㎞가량 떨어진 곳에서 작업을 지켜봤다. 오후 1시가 되자 이틀 밤을 한숨도 못 잔 가족 일부가 고개도 들지 못할 정도로 지쳤다. 이날 오전 2시 팽목항에 도착한 고 임요한(당시 단원고 2학년)군 아버지 임온유 목사는 "선체가 곧 인양된다는 설렘 덕분이었는지, 잠시 눈을 붙였을 뿐인데 내 발에 꽂혀 있던 길이 10㎝ 되는 칼이 뽑히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그는 눈물을 삼키며 "이렇게 빨리 (바다 밖으로) 올라올 수 있는 게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라고 말했다.

인양 작업이 본격화된 작년 봄부터 사고 해역서 2㎞가량 떨어진 동거차도(島) 언덕 정상에 텐트를 치고 머물던 세월호 유족들도 밤새 인양 작업을 지켜봤다. 이 중 일부는 쪽배를 타고 인양 작업 현장 수백m 내외로 접근을 시도했으나 안전 문제로 해경이 막았다.

단원고가 있는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 안에 설치된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추모객 발길이 이어졌다. 평소 하루 50~60명 수준이었던 추모객은 이날 오후 9시까지 300명을 넘었다. 총 262명(학생 250·교사 12)의 희생자를 낸 단원고 교사와 재학생들도 가슴 졸이며 인양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고 김지윤양 동생으로 2학년에 다니는 김태경(17)군은 "선체 인양 소식에 어머니는 조용히 TV만 보고 계신다. 다시 부모님이 슬퍼하시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