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엄마' 딸이니까 온몸의 힘 짜내 버텼죠"

스기사키 하나(杉咲花)는 '여성'과 '소녀'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배우다. 상처와 무게를 안으로 꾹꾹 누르며 버텨내는 어른 직전의 소녀. 올해 열아홉, 예명의 뜻은 '활짝 핀 삼나무 꽃' 정도일 텐데 정작 본인은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다"며 멋쩍어한다. 영화 '행복 목욕탕'(감독 나가노 료타)의 23일 개봉 직전 한국에 온 그를 만나 그 '성장통을 견디는 소녀의 이미지'에 관해 물었다. 스기사키는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두 손으로 유리컵을 꼭 쥔 채 "음…" 하고 한 번 숨을 죽이더니 살짝 고개를 들며 웃었다. "그렇게 보셨다니 조금은 잘해온 걸까 싶어 기쁩니다." 옆에 앉은 나가노 감독이 거들었다. "연기에 쓸쓸함의 정서가 배어 나오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양이 배우로서 가진 큰 매력이고 무기입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하나양을 생각하며 목욕탕집 맏딸 캐릭터를 만들었고, 실제 역할을 맡아줬을 때 그 '쓸쓸함의 정서'를 잘 끌어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1년 전 아빠(오다기리 조)가 소식도 없이 가출해버린 '행복 목욕탕' 집.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녀(母女)였는데, 엄마(미야자와 리에)가 갑자기 '남은 시간이 두세 달뿐'이라는 말기 암 선고를 받는다. '강철 멘털' 엄마는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채 왕따를 당하는 딸(스기사키 하나)을 일으켜 다시 학교에 보내고, 집 나간 아빠를 찾아내 배다른 어린 딸과 함께 집에 데려오며, 자기가 죽은 뒤에도 가족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목욕탕 문을 다시 연다. 결말이 뻔한 가족 드라마라 생각한다면 오산. 영화는 의외의 인물을 등장시키고 반전을 거듭하며, 인생과 가족의 의미를 꼼꼼히 짚어 가는 뒷심을 발휘한다.

스기사키가 연기하는 '아즈미'는 영화 속에서도 계속 성장한다. 왕따를 이겨낸 뒤 "나는 엄마 유전자를 이어받았으니까"라고 울음을 터뜨리는 건 시작일 뿐. 작은 동네 목욕탕집에 복잡한 사연이 왜 이리 많은지, 참아내고 극복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평범한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가장 닮은 캐릭터. "누구나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이 있으니까요. 약한 부분이 있는 나이지만, 강한 엄마의 딸이기 때문에 온몸의 힘을 짜내 버텨내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스위치로 불을 켜고 끄는 것과는 다른 것 같다. 나는 연기할 때와 안 할 때의 구분을 잘 못 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오히려 작품을 할 때는 주어진 인물의 몸과 마음에 하나가 돼서 쭉 살아가려 합니다. 멈출 수가 없다고 할까요."

스기사키는 내달 일본서 개봉하는 왕년의 기무라 다쿠야 주연 '무한의 주인'에서 부모의 복수를 의뢰하는 소녀 역을 맡아 첫 액션 연기를 선보인다. 지브리 스튜디오 출신 제작진이 만든 새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목소리 연기도 한다. "진짜 웃긴 코미디도 해보고 싶어요. 새로운 일을 해내고 조금씩 커가는 걸 느낄 때 가슴이 뛰고 신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