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쯤 실사 영화화 진행… 철이 우주여행 계속될 것"

소년은 도쿄행 야간열차를 탔다. 편도 승차권을 쥔 가난한 소년은 기관차가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 펼쳐진 창공에 압도되고 말았다. 열여덟 살, 은하가 반짝이고 있었다. "제 안에서 '은하철도 999'가 태어난 건 그 순간이었을 겁니다." 일본 만화가 마쓰모토 레이지(79)가 말했다.

만화 '은하철도 999' 탄생 40주년. 이를 기념해 열린 원화(原畵) 전시회 참석차 처음 공식 방한한 그는 "일본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얼굴이 똑같은 걸 보니 역시나 우린 같은 인간"이라고 말했다. 1981년부터 MBC에서 방영돼 국내서도 큰 인기를 끈 '은하철도 999'(1977)는 엄마 잃은 열 살짜리 주인공 철이(원작에선 데쓰로)가 영생의 기계 인간이 되려고 은하철도 999호(號)에 탑승하면서 겪는 여행기. 95개 별과 77개 정거장을 거치는 동안 철이는 기계와 인간, 불멸과 유한에 대해 생각한다. AI 시대가 심화되면서 그가 상상한 기계적 미래는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1954년 데뷔 이래 '우주 해적 캡틴 하록' '천년여왕' 등 굵직한 SF 만화를 쏟아냈다. 1957년 낸 첫 단행본 역시 '우주작전 제1호'. 그는 과거 "편도라도 좋으니 나를 우주로 보내달라"고 말한 적이 있다. "NASA가 찍은 금성 사진을 봤어요. 금성 안에 웬 유적 같은 게 있더군요. 궁금해졌고, 상상하게 됐죠."

이날 수백 명의 독자들은 하염없는 감격에 젖었다. 눈물을 흘리는 여성 팬도 있었다. 여주인공 메텔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 송도영(66)씨는 "SF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1980~90년대 우주여행을 동경하게 해준 분을 직접 뵙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원래 꿈은 기계공학자였다. "가난한 부모님을 돕고자 만화가가 됐다"고 했다. 그의 꿈은 친동생이 대신 이뤄줬다. 그의 출세작 '우주 전함 야마토'(1974) 주인공은 로켓 연구가였던 동생 스스무씨를 모델로 한 것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일제 전함 야마토가 만화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지구를 구해내는 승리의 우주 전함으로 탈바꿈하자 제국주의 미화 논란이 불거졌다. 레이지는 "제국주의와 무관하다"고 일축했다. "야마토는 당시 가장 큰 배였고, 큰 배가 여러 사람을 태우고 우주로 날아가는 상상을 했을 뿐이다. 우연히 친해진 군인으로부터 설계도를 손에 넣었고, 그걸 자세히 그렸다."

그는 전쟁 세대. "어린 시절 탄피를 주우며 놀았다"고 했다. 고달팠으나 절망적이지 않았다. 친구들 덕분이다. "고향 기타큐슈 고쿠라엔 재일교포 친구가 많았어요.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적도 있죠. 마늘이랑 고추장에 익숙지 않아 눈물을 흘리며 먹었더니 친구 어머니가 '그렇게 맛있게 먹어줘 고맙다'고 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키 150㎝ 중반의 레이지는 "못생기고 조그만 소년 철이는 나 자신"이라고 했다. "999는 미완을 뜻해요. 1000이 되면 어른이죠. 나는 아직 소년입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아직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레이지(零士)는 필명이다. '0시의 선비'는 자정에도 잠들지 않는다. 만화 인생 63년, SF와 순정·클래식음악·성인만화까지 장르 불문 50여편의 작품을 남겼으나 열차는 멈추지 않는다. 1기 '안드로메다' 편은 종료됐지만, 1998년 시작된 2기 '이터널'로의 여행은 현재진행형. 내년 실사 영화로 제작돼 후년쯤 발표될 예정이고, '우주 해적 캡틴 하록' 역시 프랑스에서 실사 영화화 의뢰가 들어와 검토 중이다. "계속 달려나가는 철이와 메텔을 그리고 싶어요. 멈추고 싶지 않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