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평(三視世評)] 정처없이 해변 거니네, 그들이 말하는 '사랑'

홍상수(57) 감독 영화에 대한 관객의 호오(好惡)는 썰물 때 바닷물처럼 갈라진다. 취향을 좇아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개인 경험을 녹여 넣는 그의 스타일에 누군가는 충동적이라거나 자기 복제라는 혐의를 둘 것이다. 담담하다가 간혹 엉뚱한 카메라 움직임은, 달리 말하면 재미없고 생뚱맞다. 가장 날카로운 경계선은 그의 영화가 가진 특유의 유머에 대한 입장을 중심으로 그어진다. 속물적인 먹물의 위선을 주로 남녀 문제와 엮어 까발리는데, 이게 불쾌한 사람들은 '딴 사람들 머릿속도 다 그렇게 지저분한 줄 아느냐'고 비난할 것이다.

그의 19번째 장편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23일 개봉했다. 영화감독 '상원'(문성근)과의 스캔들로 떠들썩한 서울을 떠나, 독일 함부르크와 강릉을 떠돌 듯 여행하는 배우 '영희'(김민희) 이야기. 전작들처럼 영화 대부분은 주인공 '영희'가 주변 사람들과 술 마시면서 나누는 대화다. 개봉 사흘째인 25일까지 관객은 1만5000여명.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8만명·2004)와 '생활의 발견'(12만명·2002) 정도가 관객 10만명을 넘겼을 뿐, 홍상수 영화는 대부분 관객이 2만~4만명 정도였다. 감독과 배우의 스캔들을 반영한 듯한 내용에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공식 선언으로 영화 외적인 관심이 쏠린 덕일 것이다.

"20대에 홍상수를 좋아했다"는 김윤덕 기자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2016)을 보면서 '홍상수는 철들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면, '밤의 해변…'을 본 뒤엔 '홍상수의 끝이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영화는 배우 김민희와의 부적절한 사랑, 그로 인해 받은 사회적 지탄과 두 사람의 고뇌를 그려 보이는 듯하다. 특유의 촌스러운 촬영 기법과 의도된 서툰 연기, 지리멸렬한 일상은 누가 봐도 20년 전과 똑같은 홍상수 영화다. 슈베르트의 현악 5중주가 묵직하게 흘러나와주지 않았다면 내내 졸다, 한숨만 짓다가 나왔을 것이다."

김민희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가짜 사랑들만 하는 주제에!"라며 대중을 향해 외칠 때는 섬뜩했고(김윤덕 기자), "누구도 사랑할 자격이 없다"는 대사엔 영희가 다다랐을 자신의 '지금 사랑'에 대한 결론이 함축"(박상현 기자)된 것으로 보였다. 방송 담당인 박상현 기자는 '영희'에게서 드러나는 김민희 자신의 모습에 주목했다. 세상의 중심부(서울)를 떠나 그녀가 떠도는 함부르크와 강릉은 납득이 안 될 만큼 어둡고 칙칙하다. "영희가 시간을 분간키 어려운 해변에 앉아 모래 위에 상원의 얼굴을 그릴 때, 마음속 풍경을 반영한 공간의 분위기는 자신이 처한 사랑의 순간에 대한 '고민'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꿈속 술자리에서 여배우는 감독에게 "언제까지 감독님 사적인 얘기들로 영화를 만들 거냐"고 다그쳐 묻는다. 감독이 "나도 숨이 막혀 죽겠다고!"라며 괴로워할 때, 객석에선 폭소가 터진다. 김 기자는 "굳이 자기 상황을 영화로 보여줄 필요가 있는 건지, 곧 '노장'이 될 홍상수에게 새로운 성찰은 없는 것인지 가슴이 꽉 막히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반면 영화 담당 이태훈 기자는 "전작 '당신 자신과…'에 이어 이번 작품을 통해 홍상수식 연애담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면서 한 단계 더 탈바꿈한 듯하다"고 평했다. "지리멸렬하고 위선적이던 영화 속 인물들이 언젠가부터 조금씩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진지해지고 있다. 끈적이지 않으니 이야기도 더 간결해졌다."

홍 감독과 김민희는 2주 전 시사회 인터뷰에서 "개인적 부분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책임지겠다"고 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꿈에서 깬 영희는 차도(車道)처럼 뚜렷한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해변을 오랫동안 걷는다. 정답이 없는 인생, 정답이 없는 사랑을 말하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