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워싱턴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트럼프의 말처럼 종잡을 수가 없다. 3월 초엔 21도까지 기온이 올라가 사람들의 옷차림이 여름 의상이었다. 이대로 봄이 오나 생각했다. 숲에 가보면 그래도 숲은 큰 변화 없이 땅 위부터 천천히 봄을 맞고 있다는 느낌이다. 달래가 여기저기 보이더니 노란 꽃이 하나둘씩 피기 시작하고 가느다란 나뭇가지에서부터 봉우리가 맺혀진다. 이렇게 날씨가 더우니 금방 숲이 변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아니다.
숲엔 아직도 지난 세월을 잊지 못해 마른 잎을 가득 안고 있는 나무도 있다. 한참을 서서 그 나무를 본다. '어째서 넌 아직도 잎을 못 떨구었니. 봄은 오는데.' 가여운 생각이 든다.
요즈음 미니멀리즘이라는 정리의 삶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버리는 것. 스마트폰으로 검색한다.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과 문화적인 흐름. <두산백과>
60년을 훨씬 넘게 살아온 삶에서 가지고 있는 것들을 버리고 단순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에 얽혀있는 것들부터 하나씩 풀어나가는 작업. 가지고 있던 신념들을 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마음 깊이 들어앉아 있는 부정의 신념들. 지식과 경험으로 얻은 긍정적인 신념까지도 버려야 했다. 쉽지 않았지만 많은 세월이 지나 찾아온 것은 유연성과 자유였다.
홀가분했다. 주위를 둘러보며 참 많이 버리는 작업을 했다. 사람과의 관계. 집안의 살림까지도. 삶은 그 자리에 서 있게 하지 않는다. 살아 숨 쉬는 동안은 또다시 모으기 시작한다.
집 앞에 높이 서 있는 오래된 목련은 저렇게 큰데도 아직 세상을 모르는가보다. 숲의 나무들은 아직 봄이 오길 기다리는데 말이다. 일찍부터 봉우리를 틔울 준비를 하던 목련은 기온이 20도가 넘자 일제히 함성을 지르듯이 꽃을 피웠다. 정말 봄이 깊숙이 온 줄 알았다. 목련도 나도.
며칠 지나자 날씨가 추워지며 비바람이 불자 파란 잔디 위에 꽃잎을 낙엽보다 더 많이 우수수 떨구었다. 어제 눈이 내리고 영하 날씨가 이어지자 떨구지도 못한 꽃들이 흉하게 얼어 매달려있다.
살면서 교과서처럼 맞아떨어지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이곳 미국땅에서 봄을 기다리며 자연과 친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