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거나 나쁘거나] "원작보다 더 정교한 시각 효과" "특유의 암울한 매력 어디로"

신체와 장기를 기계로 바꾸고, 기억과 지식을 네트워크로 공유하게 된 가까운 미래. 기억을 잃고 두뇌만 기계 몸에 이식된 미라(스칼릿 조핸슨). 그는 이름 대신 메이저(소령)로 불리며 대(對)테러 특수부대 '섹션 9'을 이끌고 정체불명의 존재 '쿠제'를 쫓는다. 하지만 곧 뒤섞인 진실과 거짓에 혼란을 겪으며 진짜 자신을 찾는 싸움에 뛰어든다.

결론부터. 이 영화의 매력은 판타지가 현실이 된 지금 상황의 시의적절한 재해석에 있다. 인공지능과 기계에 의한 인간 육체의 확장을 매혹적인 시각 효과와 액션으로 구현한 것이다. 당연히 원작 애니메이션(1995)보다 훨씬 더 대중적이다.

'고스트 인 더 쉘(Ghost in the Shell)'은 '껍데기 육신에 혼이 깃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담은 제목. '블레이드 러너'(1982)의 종말론적 분위기와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한 기계 인간의 고민을 이어받았고, 이 문제의식은 '매트릭스'(1999)로 이어졌다. 가상현실 시대의 인간 깨달음의 한계에 관한 질문 말이다. 새 영화는 진중한 철학적 질문들은 스치듯 녹여 넣는 대신 기술 의존적 문명에 대한 비판과 정체성의 문제에 더 선명하게 집중한다. "기억이 마치 우리를 정의하는 듯 집착하지만 결국 우리를 규정하는 건 행동이야."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원작의 명장면들을 더 정교하고 현란하게 스크린 위에 재구성하는 액션과 시각 효과다. 주변의 빛과 섞이며 벌이는 총격전과 육박전, 로봇의 기억 속으로 뛰어드는 '딥 다이브(deep dive)' 중에 펼쳐지는 지옥도 묘사 등은 압권이다. 기술 문명에 저항하는 청년 무리를 가리켜 '가출 청소년'이라 옮기는 등 몇 군데 자막은 유감. 문명 비판적 주제 의식을 훼손하는 나쁜 번역이다.

영화의 설명 방식은 1995년의 원작 애니메이션과는 정반대에 가깝다. 여백으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신비를 간직하는 쪽을 택했던 원작과 달리, 영화는 첫 장면부터 주인공 미라(스칼릿 조핸슨)의 탄생 과정을 공들여 묘사한다. 로봇의 골격에 인간의 뇌를 결합시키는 과정을 보여준 영화 도입부는 3D의 입체감을 충분히 살리고 있어서 그리 나쁘지 않다. 주인공들의 3차원적 동선(動線)을 강조한 총격전도 현란하다.

문제는 이 영화의 원작이 '매트릭스' 같은 SF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사이버펑크(cyberpunk)의 '신앙' 같은 작품이었다는 점이다. 가상공간(cyber)과 반항(punk)을 핵심으로 하는 이 장르 특유의 암울한 매력 말이다. 영화는 줄거리 설명이나 배경 묘사에 공을 들이느라 정작 마니아들을 매료시켰던 결정적 요소를 빼먹고 말았다. 인간과 기계가 더 이상 확연하게 구분되지 않고 선악(善惡)마저 뒤섞인 미래 세계라는 설정은 그 이후 SF 영화의 '공통분모'가 되기에 이르렀다. 주인공이 악당들보다 오히려 폭력적일 수 있고, 관료주의에 매몰된 정부 기관들은 책임 떠넘기기에 바쁘다는 내용도 기존의 선악 구조를 뒤집은 듯한 짜릿한 매력을 안겼다.

반면 이번 영화는 '출생의 비밀'을 풀기 위한 주인공의 안간힘과 총격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원작의 정취를 송두리째 잃고 말았다. 애니메이션 기억이 없는 관객들에게는 신나는 액션물로 다가오겠지만, 당시의 신선한 충격을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신성모독'으로 비칠 우려도 있다. 영화는 조핸슨의 울퉁불퉁한 살구색 복장만큼이나 어색하고 불편한 범작(凡作)에 머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