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성장의 의미 다뤄" "로맨스의 뻔뻔한 부활"

지난달 일본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사진〉 신작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국내 판권을 둘러싸고 출판사 간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국내에도 팬들이 많은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에 대한 일본 평단의 평가는 어떨까.

비평가 유카와 유타카가 문학 전문 기자 고야마 데쓰로와 나눈 대담을 모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윤현희 옮김·국일미디어)와 비평가 사이토 미나코의 평론집 '문단 아이돌론(論)'(나일등 옮김·한겨레출판)이 최근 나란히 나왔다. 일본에선 무라카미 하루키를 소재로 한 단행본만 50종이 넘는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는 1979년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등단한 무라카미가 2014년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을 내기까지 일군 문학 세계의 변화를 우호적으로 조명했다. 반면에 '문단 아이돌론'은 무라카미를 비롯해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일본에서 인기를 끈 작가 여덟 명을 냉소적으로 다룬 평론집이다. 무라카미를 다룬 글 '게임 비평의 삼매경'이 앞머리를 장식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는 무라카미의 문학이 기본적으론 인간 성장의 의미를 다룬 '성장 소설'이라고 본다. 초기엔 세상과 관계를 맺지 않는 개인을 그렸지만, 소설 '양을 둘러싼 모험' 이후엔 '관계 맺음'의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것. 1994년에 낸 '태엽 감는 새'부터 인간 내면의 악을 다루기 시작했고, 이 작품에서 "악이란 개인 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근대 일본사 속에 전쟁이라는 국면과 연결되어 전개된다"는 것. 소설 '1Q84'에선 악이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드러나면서 세상에 대해 말했다고 한다. 무라카미 소설의 세계적 인기 비결에 대해선 "선악의 기준을 잃은 시대에 인간 내면의 혼(魂)의 세계에서 만들어내는 신화 같은 이야기"라고 풀이했다.

비평가 사이토는 무라카미의 인기에 대해 1980년대 후반 일본의 거품 경제 시기와 맞물린 '문학 거품'으로 파악한다. 그녀는 "무라카미 문학의 특징은 문학 전문가들의 논평 심리를 자극한다"고 지적했다. 비평가들이 그 소설에 담긴 수수께끼를 푸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하다보니 온갖 해석이 난무하면서 작가의 인기도 높였다는 것.

무라카미의 초기작은 변두리의 동네 다방처럼 비평가들을 단골손님으로 확보했다고 한다. 비평가들이 '상실', '소외', '자폐' 등의 단어를 다방의 낙서장에 끄적거렸다. 그러다가 환상적인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비평가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졌다. 찬반양론도 벌어졌다. 저명한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은 무라카미 소설에 대해 '신화나 의례에 가까운 로맨스의 뻔뻔한 부활'이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젊은 비평가의 해석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하루키 랜드'가 탄생했다. 비평가들이 보물찾기를 하듯이, 작품에 숨은 비밀을 푸는 과정이 점점 더 컴퓨터 게임을 닮아갔다. 젊은 비평가들이 게이머처럼 소설을 풀어내곤 '게임 공략법' 같은 글을 발표하는 게 유행했다. 사이토는 "무라카미 해독 게임을 통해 문학비평이 서서히 오타쿠화(化)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