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3.30 15:25

아버지 밥상엔 날마다 날달걀이 한 개씩 올랐다. 엄마가 마련한 이른바 아버지를 위한 특별식이었다. 아버진 달걀 꼭지 위를 젓가락으로 톡톡 쳐서 구멍을 낸 다음 한 번에 잡수시곤 했다. 때때로 작은 종지에 참기름 한 수저가 담겨 상 위에 올라오면 달걀을 젓가락으로 ‘탁’하고 깨트려 그 종지에 담았다. 젓가락으로 몇 번 휘휘 저어 마시기도 했다. 어느 땐 간장을 찾기도 했다. 뜨거운 밥에 날달걀을 깨 넣고 간장을 한두 숟가락 넣으시곤 비벼 드시곤 했다. 이때 꼭 넣으시던 게 참기름이었다. 난 그 무렵 참기름이란 우리가 비빔밥을 먹을 때 좀 더 맛있게 먹으려고 넣는 거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요즘 퇴직하고 한가해지니 때아닌 요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직장에 다닐 때는 대충 배를 채우는 게 목적이었다면 요즘은 ‘어떻게 맛있게 보기 좋게 해 먹을 수 있을까?’ 가 관심사다. 내가 모르고 있던 갖가지 방법으로 해보고 있다. 본격적으로 요리 실험 중이다. 당연히 요리프로그램도 열심히 본다. 요리의 본질을 알고 거기에 맞게 요리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은 것이다.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는 나를 본다.

그 날도 그랬다. 방송에서는 어느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집의 라면 요리가 방송되고 있었다. 식당이라고 하지만 1960년대쯤의 건물로 보이는 시멘트 벽돌집이다. 겉에서 보면 그 흔한 간판 하나 없는 집이라 그 곁을 스쳐 간다 해도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그런 집이다. 그 집이 근방에서는 알 사람은 다 아는 맛집이란다.

그 집에서는 라면만 끓여서 판다. 화면으로만 봐도 군침이 돌아가는 라면이 요리로 재탄생되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 군침이 넘어가는 라면 요리가 아니라 라면에 들어가는 달걀 이야기다. 참기름 조금, 들기름 조금, 그 속에 달걀을 깨 넣고 잠시 숙성시켰다가 라면에 풀어 넣는다. 그게 달걀 비린내를 잡는 비결이란다.

방송을 본 직후, 바로 달걀말이를 시작했다. 참기름 조금, 들기름 조금, 소금 조금, 당근을 송송 채 썰어 넣고 대파를 썰어 넣었다. 불을 켜고 후라이펜을 올려놓고 달걀말이를 만들었다. 조금 식을 때를 기다려 도마 위에 올려놓고 썰다가 참지 못하고 한 개를 집어 먹어 본다. 세상에 달걀말이가 이런 맛이었다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고소한 맛이 입 안 지나 옴 몸으로 퍼져 나갔다. 물론 달걀의 비린내는 전혀 나지 않았다. 내 나이가 벌써 환갑을 넘은 지도 한참인데 인제 와서야 달걀요리와 참기름 관계를 제대로 알았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논어(論語)의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한자성어(漢字成語)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하여 새것을 안다는 뜻이다. 요즘 요리를 한다 하는 사람들이 넘쳐 나는 세상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왜 그리 들어가는 양념은 많은지 집에서 하는 요리로는 부담스러운 것이 많다. 음식의 재료 성질조차 제대로 모르고 무조건 따라 하니 맛이 있을 리가 없다. 옛사람들이 음식 재료의 성질에 따라 더하고 빼고 하면서 전해져 내려온 음식들을 먼저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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