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블랙박스] 도난방지 게이트 뚫은 '철벽 가방'

지난해 12월 20일 저녁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한 대형 의류매장 직원들은 영업을 마치고 매장을 정리하다가 300벌 가까운 옷이 없어진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이틀 후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쇼핑몰에 있는 같은 브랜드 매장도 옷 103벌을 도난당했다. 직원들이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더니 외국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초경량 패딩점퍼 등을 가지고 온 숄더백에 쑤셔넣는 장면이 포착됐다.

경찰은 두 매장에 설치된 CCTV 분석을 통해 동남아 출신으로 보이는 피의자 4명이 범행에 가담한 사실을 확인했다. 3명이 번갈아 직원의 눈을 피해 옷을 가방에 넣어 나오면 밖에서 대기하던 나머지 한명이 여행용 캐리어와 배낭에 담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매장을 나설 때 출입구에 설치된 도난방지 경보기는 한 번도 작동하지 않았다.

이 중 2명은 지난달 24일 여의도 IFC몰 같은 매장에서 또다시 옷을 훔치려다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베트남인 부모(여·33)씨와 응모(여·54)씨를 구속했다고 2일 밝혔다. 이들이 훔친 옷은 총 399벌로 시가 약 2852만원에 달한다. 경찰 조사 결과, 경보기가 조용했던 이유는 바로 '가방'에 있었다. 이들이 범행에 사용한 가방은 베트남 현지에서 제작한 것으로, 가방 안쪽에 특수 금속판을 덧대 도난방지 게이트의 전파를 차단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경보기가 설치돼있기 때문에 직원의 감시가 상대적으로 소홀한 대형 의류매장을 노렸다고 경찰은 밝혔다.

부씨 일당은 베트남에서 사채빚에 시달리다가 "한국에서 옷을 훔쳐오면 돈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지난해 12월 입국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첫 범행에 성공한 뒤 베트남으로 돌아갔고, 지난달 15일 다시 입국해 옷을 훔치려다 붙잡혔다. 경찰은 "달아난 공범 2명 및 베트남 현지에서 범행을 지휘한 총책에 대해 수사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