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 17명과 8시간… 숨 돌릴 틈도 없었다

"먹어둬요. 체력전이거든."

지난 28일 서울 강동구 구립둔촌어린이집. '1일 교사 체험'하러 온 기자에게 황연옥 원장이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무상보육 등 어린이집 운영에 정부는 연간 12조원가량 지원한다. 그럼에도 아동 학대나 열악한 보육교사 처우 문제 등 잊힐 만하면 등장하는 게 어린이집 문제다. 현장 상황이 궁금해 찾은 어린이집 1일 교사 체험은 과연 체력 소모가 컸다.

만 5세 반인 '하늘 1반' 아이들은 이날 17명이 등원했다. 이은영(33) 교사는 아이들과 놀아주면서도 항상 주변을 살피며 긴장을 풀지 않는 게 느껴졌다. 첫 '사고'가 일어났다. 블록 쌓기를 하던 영훈(가명)이가 "상호가 블록을 자꾸 부순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 교사가 즉시 개입했다.

"상호가 블록놀이를 하는데 영훈이가 방해하면 상호는 기분이 나쁘겠지요?" 상호가 고개를 떨구며 "그냥 장난이었어요"라고 했다.

"영훈이는 기분이 나쁘면 나쁘다고 상호에게 말해줘야 해요." "네…."(영훈)

상황이 순식간에 정리됐다. 아이들에게 건네는 말이 신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교사는 "아이들에게 '잘했다' '예쁘다' 같은 표현은 조심해야 한다"며 "왜곡된 가치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수시로 다투고, 삐지고, 아팠다. 화장실 갔다가 마무리를 못 하고 마냥 숨어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이 교사는 귀신처럼 알아채고 뒷정리를 도와줬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휴식 시간에도 아이들 알림장을 확인하고, 다음 수업 준비하느라 이 교사는 여전히 분주했다.

오후 2시 자유선택활동 시간. 이제 아이들이 기자에게 먼저 다가왔다. 한 아이에게 '미로'를 그려줬더니 다른 아이들에게 자랑하는 통에 열댓 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저도 그려주세요." "더 어렵고, 더 재밌게." 아이들 요구에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른 놀이를 하자며 손을 잡아끄는 아이들도 많았다. 이 교사는 "힘센 남자 선생님이 와서 아이들이 신났나 보다"고 했다.

오후 3시 30분 간식 시간이 끝나자 부모들이 하나둘 아이를 데리러 왔다. 그때 아이 하나가 다가오더니 기자를 '아빠'라고 부르며 "안아달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들은 다른 아이 4명도 덩달아 '아빠'라고 부르며 기자에게 안겨들었다. 아빠라는 호칭을 궁금해하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빠가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와요. 아빠가 두 명이라 한 명은 일하고 한 명은 나랑 놀아주면 좋겠어요."

기자의 보육교사 체험은 오후 5시쯤 끝났지만 이 교사는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저녁 7시 이후에도 남아 행정업무를 처리했다고 한다. 육아정책연구소에서 2013년 어린이집 보육교사 803명을 설문한 결과, 주당 근무시간(보육+보육준비+기타업무)은 55.1시간으로 법정 근로시간(40시간)보다 15시간 넘게 길었다. 전체 어린이집 보육교사 평균 월급은 184만3000원, 민간어린이집은 평균 163만4000원이다. 한 보육 전문가는 "대선 주자들이 달콤한 공약을 내걸기 전에 보육교사 여건 개선부터 신경 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있을 때는 몰랐는데, 퇴근하고 긴장이 풀리니 온몸이 쑤셨다. 다음 날 또 해야 한다면 몸살이 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