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촌티 난다고?… 아니, 그게 첨단이야

촌티 나던 것이 첨단이 된다. 다시 바지통이 넓어지고, 신발에 또 바퀴가 달리고, '스타크래프트'가 되살아나고, '엽기적인 그녀'가 찾아온다. 패션부터 놀이·방송에 이르기까지 2000년대의 유행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른바 '유행 20년 주기설(說)'. 2000년대, 뉴밀레니엄(New Millennium)의 재림이다.

◇바퀴 달린 신발·부츠컷, 돌아오다

영국 복식학자 제임스 레이버(1899~ 1975)는 일찌감치 '레이버의 법칙'을 통해 "10년 전엔 저속하던 것이, 5년 전엔 뻔뻔한 게 되고, 유행이 도래하면 맵시가 되며, 20년 뒤엔 다시 '별꼴'이 된다"는 유행의 속성을 짚어낸 바 있다. 최근 다시 유행하는 바퀴 달린 신발, 힐리스가 대표적인 예. 2002년 등장해 2003년 당시 열아홉 살이던 가수 세븐이 신어 대박을 터뜨렸지만 이후 빠르게 잊혔다. 지난해부터 이 신발을 수입·판매 중인 토박스코리아 원용재 이사는 "2000년대 '힐리스'의 추억을 지닌 소비자의 영향인 것 같다"며 "지난해 4만 족, 올해 10만 족 판매가 예상되고 가을쯤 성인용도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청바지의 경우 스키니진이 물러나고, 무릎 아래부터 통이 넓어지는 부츠컷(boots cut)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고 있다. 2002년 한 경제지는 "요즘은 부츠컷이 대세"라며 "짧은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는 '매직'을 발휘한다"고 쓰기도 했다. 지난해 미국 온라인 매체 '보카티브(Vocativ)'는 패션계 유행 주기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1992년 유행한 신발 닥터마틴과 플란넬 셔츠는 2003년 다시 유행을 탔고, 1995년 유행한 나팔바지가 2015년, 1996년의 크롭톱(일명 배꼽티)이 2015년 유행하는 등 대부분 20년을 경계로 부활했다. 한국트렌드연구소 박성희 책임연구원은 "어린 세대가 경제력을 갖춘 기성세대가 돼 과거를 추억하려는 성향을 드러내면 문화요소가 재현된다"고 말했다.

◇스타크래프트·보드게임의 부활

올여름엔 2000년대 PC방 문화를 선도한 '스타크래프트'가 리마스터 버전으로 돌아온다. 청소년 시절 스타크래프트에 열중하던 30~40대를 중심으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001년부터 스타크래프트 해설을 해온 이승원(42)씨는 "2000년대는 인터넷 등 새로운 문화가 시작된 독특한 변곡점"이라며 "새 문화와 청춘을 함께한 첫 세대의 기대 심리가 큰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말했다.

2000년대 대학가에 '보드게임방' 열풍을 선도했던 보드게임 역시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9월엔 월간 '보드게임'이 창간됐고, 오는 8일엔 독일 보드게임 '아그리콜라' 실력을 겨루는 챔피언십이 열린다. 인터넷몰 옥션에 따르면, 보드게임 판매율은 지난해 동기 대비 44% 증가했다. 옥션 영업실 관계자는 "당시 대학생이던 세대가 학부모가 돼 교육용으로 많이 구매하는 것 같다"면서 "최근 TV 프로그램 소재로도 각광받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말부터 급속히 퍼진 인형 뽑기, 1999년 국내 TV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해 2000년 빵 스티커로 히트했다가 최근 증강현실 게임으로 부활한 '포켓몬스터' 역시 마찬가지다. 고려대 사회학과 이명진 교수는 "뉴밀레니엄 당시의 문화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상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추억팔이 마케팅?

2001년 배우 전지현과 차태현을 톱스타로 만든 영화 '엽기적인 그녀'도 컴백한다.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가 5월쯤 SBS에서 방영되는 것. 배경은 조선 시대로 바뀌지만, 극중 배역 이름 등 영화와 유사한 콘셉트를 차용했다. 제작사 래몽래인 관계자는 "이름만으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라 제작을 결정했다"면서 "원작 영화에 대해 추억을 지닌 세대의 유인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 같은 뉴밀레니엄 유행의 도래가 '추억팔이 마케팅'에 의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2015년 MBC '무한도전'이 기획해 1990년대 가수를 출연시켜 재미를 봤던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류의 유사품 아니냐는 것.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복고(復古)는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것보다 안전한 전략이지만, 전작(前作)의 명성에만 기대 당시 감수성을 담아내지 못하면 실패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나온 영화 '엽기적인 그녀2'는 관객 7만여 명을 동원하는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