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가 수다 떨 듯 편안하게"

그는 17년 동안 거의 매주 드레스를 입고 시청자 앞에 섰다. '열린음악회'를 진행했던 전 KBS 아나운서 황수경(46)이다. 차분하고 우아한 이미지가 워낙 강해 집에서도 드레스만 입고 지낼 것 같다고 하자 깔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저 그렇게 답답하고 무서운 사람 아니라니까요!"

황수경이 5일 저녁 8시 40분 첫 방송 하는 TV조선 '황수경의 VJ 리포트' 진행을 맡았다. 요리, 여행, 교육, 재테크 등 다양한 분야의 생활 정보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이다. 2년 전 KBS를 떠나 프리랜서 MC로 독립한 그가 종편 채널에 출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첫 촬영은 지난주 서울 연남동에서 했다. 3일 광화문에서 만난 황수경은 "그날 마침 비가 내리더라고요. 장수(長壽) 프로그램이 될 거예요"라고 했다.

'장수'를 확신하는 이유는 '열린음악회' 첫 방송 때도 폭우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후로 비는 그에게 좋은 징조가 됐다고 한다. 황수경은 22년간 KBS에 재직하면서 '열린음악회' 17년, 'VJ특공대' 5년, '여유만만' 3년 등 한번 맡은 프로그램을 오래 끌고 가는 진행자로 유명했다. 황수경은 그 힘이 "철저한 준비에서 나온다"고 했다.

실제 촬영 시간의 10배 이상 들여 준비하고 연구하는 것이 그의 오랜 원칙.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할 땐 초대 손님을 열심히 연구하고, 생활 정보 프로그램을 맡았을 땐 VJ가 찍어온 영상을 미리 훑어본다. 음악회를 진행할 때는 곡마다 얽힌 사연과 작곡가, 연주자, 악기까지 미리 찾아 공부했다. 리허설에도 직접 참여해 무대에 오르는 가수나 오케스트라 컨디션까지 살펴볼 정도였다.

대본을 바탕으로 자기 입에 붙는 자기 언어를 사용해 매번 멘트를 새롭게 썼다. "진행자로서 늘 비슷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시청자가 지루해지지 않도록 참신한 멘트를 개발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충분히 공부하면 자신감도 쌓이고 돌발 상황이 생겨도 순발력 있게 대처할 수 있지요. 그래야 시청자도 편안함을 느끼고요." 황수경은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것이 시청자에 대한 기본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2년간 KBS 간판 아나운서로 통하던 그는 2015년 프리랜서가 됐다. "오래 몸담았던 조직을 떠난다는 게 참 섭섭하고 두려웠죠.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도전 정신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 같았어요." 회사를 떠나 가장 달라진 점이 뭐냐고 묻자 "매일 요가를 한다"는 소박한 대답이 돌아왔다. "매주 '열린음악회' 때문에 지방 출장 다니고 새벽에도 출근하는 생활을 해오다가 처음으로 나만의 삶이 생긴 거죠."

고등학교 1학년 아들, 초등학교 3학년 딸과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대학원 다니며 문화 콘텐츠 전공 석사 과정도 밟고 있다. "진짜 실력만으로 평가받아야 하니 일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했다. "지금도 무대에 서 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는 그는 "아줌마로서, 두 아이 엄마로서 함께 수다 떠는 편안한 느낌으로 시청자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