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고학력 여성 탓 말고 가사분담부터"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자녀의 수) 2명을 웃도는 프랑스엔 총리실 아래 가족아동고령화정책고등위원회(이하 가족정책위)가 있다. 2009년 정부 자문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시민단체와 학자, 기업인 등 60여 명이 가족 정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지난달 29일 방한한 베르트랑 프라고나르(76) 프랑스 가족정책위 상임의장은 "프랑스는 GDP의 약 5%를 가족·아동 관련 정책에 쏟는다"며 "고령화 인구를 책임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그는 1974년부터 보건복지부에서 일하면서 현 프랑스 가족 정책의 입안을 주도했다.

프랑스는 평균적으로 아이마다 매달 약 500유로를 세제 또는 수당으로 지급하고 무상 공교육과 아동 치료비 85%를 제공한다. "1970년대부터 가족 정책만큼은 높은 비용 지출도 감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습니다. '사회 예산을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아동에 대한 지원이 지나치다'는 의견은 극소수입니다."

특히 편부모 가정과 다자녀 가정, 영아가 있는 가정의 아동을 집중적으로 돕는다. 그는 모든 가족 정책의 기준은 '아동을 누가 돌보는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는 아이가 주는 행복을 최고로 생각합니다. 한국처럼 염세적이거나 사회에 비판적인 청년도 많지만 그들 역시 아이를 갖는 일은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젊은 여성에게 '아이를 몇 명 낳고 싶으냐' 물어보면 평균 2.6명이라 답하죠."

재혼을 해 새 가정을 꾸리는 이도 많다. 프라고나르 의장도 전처와 아이 둘, 현재의 처와 아이 둘을 낳았다. "두 번째 아내는 한 명 더 낳기를 원했지만 제 나이가 너무 많아서 힘들 것 같았죠(웃음)." 그의 아내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워킹맘으로, 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잦았다. 출산 후엔 아이를 보육원에 맡겼고 3세 때부터는 보모를 구했다고 했다. "프랑스에선 보모를 구하기가 매우 쉬운 편이거든요. 아주 풍족한 생활은 아니지만 행복하게 살기엔 충분했습니다."

몇 달 전 '고스펙 여성이 저출산 원인이니 스펙을 줄이고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듣고서는 "프랑스만 봐도 근거 없는 소리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프랑스의 학력 높은 여성들도 결혼과 출산을 늦추긴 하지만 아예 출산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는 지적이다.

"여성이 교육을 받고 경제활동을 하면 가구 소득이 2배가 되니 출산율이 높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는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만 마련되면 능력 있는 여성이 더 아이를 많이 낳을 것이라 봤습니다. 70년 전쯤에야 가정주부를 위한 정책을 만들었죠."

저출산은 한국 사회의 당면 문제다. 조언을 부탁하자 "국가마다 여건이 다르지만 프랑스는 40년 전부터 가족 정책에 투자해왔다"고 했다. "다만 가족 정책은 여성 정책과 떨어질 수 없다"면서 프랑스 여성과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추이를 비교했다.

"프랑스의 경우 출산 후 2~3년은 경제활동 참가율이 줄다가 다시 늘어나는데 한국은 점점 감소합니다. 프랑스는 남녀가 가사를 분담하고 평등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바꿔가고 있기 때문이죠. 여성이 행복해야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만큼 자녀를 낳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