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연기는 산소"… 癌 입원 중에도 촬영장 나왔던 그녀

"역할을 맡았으니 끝까지 해야죠. 딱 쓰러지기 전까지는."

탤런트 김영애(66)는 과거 한 잡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찍는 동안 췌장암 진단을 받은 사실을 뒤늦게 공개한 뒤였다. 당시 그는 "연기는 나에게 산소나 다름없다"고 했다.

김영애씨가 췌장암에 따른 합병증으로 9일 별세했다. 김씨의 소속사 스타빌리지엔터테인먼트는 "고인이 2012년 췌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했지만, 작년 겨울 건강이 악화돼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고인은 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연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투병하면서 드라마 '내 사랑 나비부인' '닥터스', 영화 '변호인' '인천상륙작전' 등에 출연했다. 작년 8월엔 KBS 주말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양복점 안주인 최곡지 역을 맡았다. 10월부터 넉 달 동안은 입원하고도 투병 상황을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병원에서 외출증을 받아가며 촬영을 계속했다.

처음 계획대로 50회까지는 촬영을 마쳤지만 '월계수'가 인기에 힘입어 4회 연장 방영할 때에는 결국 출연하지 못했다. 드라마에선 막바지에 시골로 요양을 떠나는 것으로 그려졌다. 올해 2월 26일 방송된 최종회에 고인이 등장하지 않아 건강이 악화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돌았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고인은 1971년 MBC 공채 탤런트 3기로 데뷔했다. 그해 '수사반장'을 시작으로 '세 자매' '풍운'(1982) '뿌리깊은 나무'(1983) '빙점'(1990) '형제의 강'(1996) '맹가네 전성시대'(2002) 등의 드라마와 '겨울 나그네'(1986) '연산일기'(1988) '해적 디스코왕 되다'(2002) '애자'(2009) 등 영화에 출연했다. 조선 시대 기생부터 여성 기업인까지 다양한 역할을 넘나들었고 특히 자상하고 따뜻한 어머니 역할을 많이 맡았다. 1990년대에는 식품 회사 오뚜기의 광고 모델로 활약해 '오뚜기 아줌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74년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신인상을 받은 뒤, 1982·1997·2000년에도 연기상·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2014년에는 영화 '변호인'의 헌신적인 어머니 최순애 역으로 청룡영화상과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동시에 받았다.

2001년 황토 제품 회사를 공동 설립하고 부회장직을 맡으며 사업가로 변신하기도 했다. 황토 입욕제가 '한국 인터넷 히트 상품'으로 선정되며 주목받았지만 한 TV 고발 프로그램이 제품에서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내용을 방송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정부 발표를 통해 제품에 유해성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 경영에서 손을 떼고 배우로 복귀했다.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영화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트위터에 고인이 출연했던 영화 '카트' 사진과 함께 "함께 영화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가수 조PD도 "가장 아름다우셨던 그 시절의 모습으로 기억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조PD의 여동생은 고인의 며느리다.

유족으로 아들 이민우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은 11일 오전 11시. (02)2227-7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