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스타는 '22년 루저'를 버리지않았다

74번 도전 끝에 마침내 메이저 대회 챔피언에 오른 세르히오 가르시아(37·스페인)는 그린에 엎드리더니 오른손 주먹으로 몇 차례나 그린을 두드려 봤다.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해보려 뺨을 꼬집어 보는 사람 같았다. 해 질 녘 조지아 소나무가 멋진 스카이그린을 만들어 내는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에서 이 스페인 골퍼의 행동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몽환적으로 보였다. 팬 수만 명이 '이건 진짜야'라고 알려주려는 듯 '세르히오!'를 연호했다.

1990년대 '엘니뇨(스페인어로 소년이란 의미)'라는 애칭과 함께 혜성처럼 등장해 타이거 우즈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가르시아. 하지만 번번이 메이저 대회의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하는 데다 다혈질 언행으로 '골프계의 루저'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던 선수다. 그가 1996년 메이저 첫 도전 이후 22년 만에 메이저 무대 정상에 섰다. 그는 "내 골프 인생이 공포영화처럼 끝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드라마, 해피엔딩이 있는 드라마가 될 것이라 꿈꿨다"고 했다.

10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에서 막을 내린 시즌 첫 메이저 골프 대회인 제81회 마스터스. 이날 마지막 4라운드의 전반 9홀이 끝나면서 대회는 나란히 2타씩 줄여 8언더파로 동타가 된 가르시아와 저스틴 로즈(37·잉글랜드)의 매치플레이 양상으로 압축됐다. 가르시아는 후반 들어 갑자기 메이저 울렁증을 보이기 시작했다. 10번홀과 11번홀(이상 파4)에서 연속 보기. 하지만 가르시아는 14번홀(파4) 버디, 15번홀(파5·530야드) 이글로 단숨에 공동 선두로 복귀했다. 15번홀에서 190야드를 남겨 놓고 8번 아이언으로 홀 4m에 붙인 아이언 샷을 놓고, 가르시아는 "내 인생 최고 샷 중 하나"라고 했다.

둘은 합계 9언더파 279타로 연장에 들어갔다. 18번홀(파4)에서 열린 연장 첫 번째 대결에서 로즈는 티샷 실수를 저지르며 3온 2퍼트로 보기에 그쳤다. 반면 가르시아는 버디 퍼트에 성공하며 그린 재킷 주인공이 됐다. 가르시아는 상금 198만달러(약 22억5000만원)와 함께 평생 마스터스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가르시아는 열아홉이던 1999년 마스터스에서 아마추어 선수 중 최고 성적을 올리고 프로로 전향했다. 그해 PGA챔피언십에서 인상 깊은 플레이를 펼치며 우즈와 우승 경쟁을 벌이다 결국 준우승했다. 이후 메이저 대회의 질긴 악연이 그를 괴롭혔다. 2007년 브리티시오픈에서는 마지막 홀 짧은 퍼팅 실수로 연장전까지 간 뒤 파드리그 해링턴(46·아일랜드)에게 우승컵을 내줬다. 2008년 PGA챔피언십과 2014년 브리티시오픈에서도 준우승에 머물러 메이저 준우승만 4차례 기록했다. 이번 대회 이전까지 메이저에서 22차례나 톱10에 오르고도 우승하지 못한 그에게 '메이저 대회 우승이 없는 가장 뛰어난 골퍼'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가 붙었다. 그는 흑인인 우즈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등 다혈질에 느림보 플레이로 오명을 쓰기도 했고, 2002년 한국오픈에 출전했을 때는 샷할 때 시끄럽게 구는 팬을 클럽으로 위협하는 동작을 해 구설에 올랐다. 테니스 스타 마르티나 힝기스, 영화배우 제시카 알바, 그레그 노먼의 딸과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가르시아에게 올해는 여러모로 인생의 전환점이다. 약혼녀인 골프 채널 리포터 출신 앤절라 애킨스와 오는 7월 결혼을 앞두고 있다. 골프 선수 출신인 애킨스는 긍정적 내용의 글귀를 담은 포스트잇을 집 안 곳곳에 붙여 놓아 가르시아가 읽게 하고 있다고 한다. 가르시아는 "이제 메이저를 한 차례만 우승한 골퍼 중 최고라 불릴지 모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웃었다. 오거스타의 해피엔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