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변덕에… 일본 영화는 최고 흥행, 한국은 개봉 '0'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감독 신카이 마코토)은 지난해 12월 2일 중국 내 6만7823개 상영관에서 개봉했다. 일본 영화 사상 중국 내 최다 개봉관. 두 달간 상영하며 올린 매출이 5억7700만위안(약 958억원)으로 중국에서 일본 영화가 거둔 최고 기록이었다. 일본은 작년 한 해 자국 영화 11편을 중국에서 개봉했다. 이 역시 근래 최다. 반면 작년에 합작 영화를 제외한 순수 우리 영화는 단 한 편도 중국에서 개봉하지 못했다.〈그래픽〉 사드 배치 전부터 슬금슬금 아귀를 조여오던 중국 당국의 '한한령(限韓令)'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정치·외교 문제에 따라 요동치는 중국의 변덕에 한국과 일본 영화의 중국 내 성적도 울고 웃는다.

◇중·일 영토 분쟁 땐 일본 영화도 '0'

중국에서 개봉한 일본 영화 숫자는 2011년 4편, 2012년 1편이었다. 그러나 2012년 9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이 불거진 뒤 2013~14년엔 단 한 편도 중국 내 극장에서 자리를 얻지 못했다. '한일령(限日令)'이 풀리기 시작한 건 분쟁이 잦아든 2015년부터였고, 마침내 작년에 최고 기록으로 이어진 것이다. 중국 당국의 '강짜'에 휘둘리던 일본 영화의 화려한 대륙 귀환이다.

반면 우리 영화는 된통 당하고 있다. 중국은 합작이 아닌 외국 영화 개봉 편수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 할리우드 대작들을 제외한 다른 영화들이 상영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 영화는 2011년 이후 매년 3~5편씩 꾸준히 중국 내에서 개봉됐다. 중국을 포함한 외국과의 합작 영화 쪽에서도 '수상한 그녀'의 쌍둥이격 영화인 '20세여 다시 한 번'이 현지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등 괜찮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작년엔 한·중 합작 영화도 된서리를 맞았다. 사드 배치 발표 전에 개봉한 세 편은 성적이 신통치 않았고, 사드 발표 뒤 우여곡절 끝에 개봉한 합작 영화 두 편은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중국 극장에서 사라졌다.

◇중국 리스크 벗어나는 기회로

오는 27일 개봉하는 전주국제영화제도 중국의 감독이나 영화인을 단 한 명도 초청하지 못했다. 영화제 관계자는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베이징영화학교 등의 독립영화 감독과 배우 등을 초청했음에도 '못 간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했다. 중국 당국은 오는 16~23일 열리는 베이징국제영화제에서도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 영화의 상영을 막았다. 이번 사태는 그동안 중국 시장에 매달려온 한국 영화계에 교훈적이다. 매력적인 만큼 불안정하며 위험한 시장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계기가 된 것이다.

임대근(47) 한국외대 교수(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 대표)는 "궁극적으로 중국 정부는 자국 대중문화의 경쟁력을 키워 일본도 한국도 배제하려 할 것이다. 중국에 '올인'하는 것은 위험하며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 역시 문화 욕구가 크지만 공급이 따르지 못하는 지방 거점 도시를 공략하거나 대만·홍콩 등 중화권 파트너와 함께 우회하는 등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중국과 방송·영화 합작 사업에 밝은 한맥영화사 김형준(57) 대표는 "동남아 시장의 경우 자국 영화 점유율이 낮고 시장 성장 잠재력이 크다. 숙련된 한국 영화인들이 현지에 진출해 현지 영화인들과 합작을 통해 대안(代案) 시장을 넓혀 가는 등 우리 영화의 해외 진출을 위한 전략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